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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승혜 (삼성미술관 Leeum)
저널정보
한국미술사교육학회 미술사학 美術史學 第30號
발행연도
2015.8
수록면
97 - 124 (28page)
DOI
10.14769/jkaahe.2015.08.3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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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이래 중국의 불탑이 고고학적으로 발굴되고 그 성과가 속속 보고됨에 따라 중국 불사리장엄의 양식적 변천과 역사적 전개, 사회적·정치적함의, 종교적 의의 등에 대한 많은 연구 성과가 발표됐다. 그러나 남송(南宋, 1127-1279) 시대의 불사리장엄은 아직 연구 성과가 미미하다. 이는 현재까지 알려진 중국 불사리장엄 중 남송대에 조성된 경우가 드물며, 알려진 사례 역시 민간발원이 대부분이라는 점과 관련이 있다. 재화의 투입과 고급인력의 동원에 있어 제약을 안고 있었던 민간 발원자들이 후원한 불사리장엄은 그 규모와 양, 조형적 성취에 있어서 앞선 시기의 황실이나 귀족 발원의 사례와 견주기에 부족함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1982년에 절강성 영파시 천봉탑(天封塔)의 지궁(地宮)에서 발굴된 불사리장엄은 중국의 불사리신앙과 장엄의 전통이 남송대에 들어와 어떻게 변모됐는가를 조망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천봉탑의 지궁은 1층 탑실(塔室)의 중심부 아래 자리잡고 있었으며, 그 중앙에는 석함이 놓여 있었다. 석함에서 발견된 유물 중 가장 주목되는 것은 마치 불전(佛殿)을 축소한 것처럼 보이는 전각형태의 정교한 은제 사리기이다. 이 사리기는 정면의 처마 밑에 현괘된 현판에 ‘천봉탑지궁전(天封塔地宮殿)’(이하 지궁전으로 간칭)이라 새겨져 있어 그 명칭이 명확히 확인된다. 또한 석함의 뚜껑과 지궁전의 서벽에 새겨진 명문을 통해 1144년에 명주의 조윤 일가가 발원한 것임을 알 수 있다.
1982년에 천봉탑 지궁이 발굴된 이래로 여러 연구자들이 지궁전의 독특한 형태가 당시의 불교건축을 모방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과연 남송대 사찰의 수많은 전각 중 어느 것을 모델로 삼은 것인지는 논의되지 않았다. 발원자는 왜 이 형태를 사리기에 채택했으며, 지궁전의 내부는 과연 어떠한 논리에 의해 장엄됐을까? 또한 지궁전 안에서 발견된 공양품을 희사한 다른 여러 후원자들은 어떠한 바람에서 불사리공양에 참여했던 것일까? 이 글은 지궁전의 형태, 봉안된 유물의 배치와 구성, 명문의 종합적인 비교 분석을 통해 이상의 질문에 대답하려 한다. 이를 통해 ‘지궁전’의 종교적·문화적 함의를 고찰하겠다. 나아가 불사리신앙이 정토신왕과의 관계 속에서 변모한 양상을 12세기 명주(明州)의 지역문화 안에서 구체적으로 밝혀보겠다.

목차

Ⅰ. 천봉탑 지궁전과 남송대 불사리장엄
Ⅱ. 지궁전의 구조와 남송대 불전건축
Ⅲ. 지궁전의 내부장엄
Ⅳ. 지하에 정토도량 짓기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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