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신용철 (통도사성보박물관)
저널정보
한국미술사학회 미술사학연구(구 고고미술) 美術史學硏究 第264號
발행연도
2009.12
수록면
63 - 94 (32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본 논문은 탑이 지닌 여러 기능 가운데 지역을 수호하는 비보탑의 형성과 전승이라는 측면에서 고찰한 것이다. 본 연구에서 주된 연구 범위가 되는 안동 지역은 경주시를 제외하면 단일 시군으로는 가장 많은 불탑이 남아있으며, 분포범위도 좁은 지역에 집중된 양상을 보여준다. 또한 불탑의 건립시기가 고려 초기로 집중된 점, 다른 여타 지방지에 언급되지 않은 불탑과 관련된 다양한 전승과정이『永嘉誌』에 남아 있는 점 등에서 여러가지 단서를 제공한다. 본 연구의 결과 안동 불탑의 특성이 지역을 수호하는 비보탑의 개념으로 성립 및 전승 되었을 가능성을 문헌과 실례를 통해 제시하였다. 이를 통해 안동 불탑은 지역민의 각별한 관심과 보호로 전승되어 왔다는 당시 불탑관의 새로운 변화와 전개과정을 살펴보았다.
역사적으로 불탑은 여래의 사리를 봉안하는 분묘이며 신도들에게는 여래의 깨달음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기능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이와는 별도로 삼국시대에는 국가를 지켜주는 호국의 구심체로 인식하게 되었고, 통일신라시대에는 개인의 추복을 비는 대상체로서의 인식적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신라 말기부터 고려 초기에 이르러 탑이 가진 관념은 변화를 갖게 되는데, 그것이 裨補寺塔說이다. 즉, 지역에 地勢나 水勢를 따져 핵심적 장소에 탑을 세우면 탑이 신통력을 발휘하여 그 땅을 다스리고 결국 공공의 이익이 되어 돌아온다는 것이다. 따라서 비보사탑설의 성립은 부처에 의지하여 지세를 다스림으로써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공간적 개념에서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안동의 불탑은 이 같은 탑신앙의 변천과정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오늘날 안동은 유교문화의 중심지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안동이 도시의 기능을 수행했던 시기부터 조선시대까지 줄곧 안동민에게는 비보탑이 존재했다. 조선 중기에 편찬된『영가지』는 현재 남아 있는 어느 地方誌보다도 압도적으로 다수의 불탑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는 점, 또한 자세한 건탑 위치와 건탑 배경을 설명하고 있는 점에서 당시 안동민이 불탑에 갖고 있던 관심을 파악할 수 있다. 따라서 안동민에게 있어 불탑은 단순히 불교의 상징물을 뛰어넘어 나와 고을을 지켜주는 수호체이자 동시에 모두가 지켜나가야 할 대상체였던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안동 지역 불탑의 현황과 편년
Ⅲ. 『永嘉誌』를 통해 본 안동 불탑의 성격
Ⅳ. 불탑의 전승과 안동민의 인식
Ⅴ.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2-609-0040871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