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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미술사학회 미술사학연구(구 고고미술) 美術史學硏究 第285號
발행연도
2015.3
수록면
193 - 215 (2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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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연구자들은 남송관요와 관련된 송대의 문헌 가운데 가장 사료적 가치가 높고 아울러 풍부한 내용을 전하는 것으로 『坦齋筆衡』을 꼽는다. 우리는 이 문헌을 토대로 남송관요와 관련된 몇가지 핵심적인 사실들을 추론할 수 있다. 남송 소흥 32년(1162) 이전에 임안의 수내사영내에 “內窯”(수내사관요)를 설치하였으며 그것을 주도한 관부가 後苑(邵局)이었다는 점과 수내사관요에 뒤이어 교단하관요를 설치하였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일부 연구자들은 남송중기에 쓰여진 것으로 여겨지는 『백보총진집』 卷9 靑器條에 “新窯, 修內司自燒者”라고 한 대목을 근거로 남송관요 또는 교단하관요를 설립ㆍ운영한 관부가 수내사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또 다른 연구자들은 거의 같은 시기에 趙彦衛가 찬한 『운록만초』에 “??器,……近臨安亦自燒之”라고 한 대목에 보이는 “近”에 주목하여 임안에 관요를 설립한 것이 『운록만초』가 완성된 1206년보다 몇 년 앞선 때라고 주장한다. 이들의 견해에 따르면, 수내사관요의 설립을 주도한 관부가 후원(소국)이라는 점도, 1162년 이전에 임안에 관요가 설립되었다는 점도 부정될 수밖에 없게 된다. 하지만 그들의 주장은 『백보총진집』과 『운록만초』의 해당 대목의 의미를 오해한 데에서 비롯되었다고 판단된다. 즉, 『백보총진집』의 해당 대목은 그들이 이해한 것과 같이 남송관요자기가 수내사가 “自燒”하였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것이 수내사(영)에서 “自燒”하였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운록만초』의 “近”은, 近의 본래적인 의미와 조언위가 사용한 “近”의 용법 등을 통하여 볼 때, 1206년보다 몇 년 앞선 때를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긴 시간적 범주를 의미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백보총진집』과 『운록만초』에 보이는 해당 대목은 『탄재필형』의 남송관요 관련 기록과 거의 동일한 사실은 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백보총진집』과 『운록만초』에 근거하여 『탄재필형』에 보이는 남송관요 관련 기록의 신빙성을 의심할 까닭이 없다.

목차

Ⅰ. 문제의 제기
Ⅱ. 『百寶總珍集』 靑器條의 “新窯”와 修內司
Ⅲ. 『雲麓漫?』에 보이는 “近臨安亦自燒之, 殊勝二處”의 신해석
Ⅳ. 나머지말 - “自燒” 의미의 재음미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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