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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송혜영 (영남대학교)
저널정보
서양미술사학회 서양미술사학회논문집 서양미술사학회 논문집 제42집
발행연도
2015.2
수록면
225 - 253 (29page)
DOI
10.16901/jawah.2015.02.4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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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차일드(Rothschild)는 19세기 유럽에서 제일 큰 은행을 소유했던 유대인 가문의 이름이다. 로스차일드가는 대부분의 부호들처럼 거대한 성과 저택을 지었고, 그 안에 소중하고 값비싼 미술품들을 소장했는데,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현재 파리 루브르 박물관, 런던 대영박물관, 비엔나 미술사박물관과 공예품미술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그렇다면 거의 한 세기에 걸쳐 이루어진 로스차일드가 사람들의 미술품 수집은 어떤 과정으로 진행되었는지, 본 연구는 바로 이런 질문에서 출발한다. 특히 로스차일드가는 바로크와 로코코 양식을 선호하는 가운데 상당수의 17세기 네덜란드 그림들을 소장했는데, 본 연구는 여기서 발견되는 귀족적인 취향과 시민의식의 대립된 관점에 문제를 제기하고 그 원인을 규명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치에 의해 무자비하게 진행된 미술품의 몰수과정과 전후의 회수작업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본 연구는 모든 로스차일드가의 미술품 수집을 잘 대변하는 동시에 나치에 의해 가장 큰 피해를 입었던 비엔나 로스차일드가에 초점을 맞추었다.
비엔나 로스차일드가의 미술품 수집은 세대에 따른 차이점을 보여준다. 초기의 로스차일드가는 무절제한 취향으로 미술품을 사는데 급급했으며, 후대로 가면서 교양인으로서의 예술적인 안목을 지니게 되었다. 특히 로스차일드가는 귀족적인 취향의 바로크와 로코코 양식을 선호했으며, 이와 동시에 시민계급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17세기 네덜란드 그림들을 적극적으로 수집했다. 요컨대, 그들은 선조가 누리지 못했던 과거의 부귀영화를 현실에서 재현하고자 했으며, 다른 한편으론 스스로의 힘과 노력으로 부와 명성을 일구어낸 시민으로서의 자긍심을 과시하였다. 그러나 4세대에 걸친 비엔나 로스차일드 가문의 역사는 나치독일에 의해 막을 내렸고, 몰수당한 예술품들 가운데 상당수는 전쟁이 끝난 후에도 강요된 기증의 형식으로 오스트리아 공공 박물관과 미술관의 소장품이 되었다. 그리곤 수차례에 걸친 법적투쟁을 통해 드디어 1998년 5세대의 후손은 선조들의 소장품을 회수할 수 있었다.

목차

Ⅰ. 들어가는 말
Ⅱ. 가문의 번영과 쇠퇴
Ⅲ. 아마추어 미술애호가에서 미술전문가로
Ⅳ. 귀족취향과 시민의식
Ⅴ. 나치의 몰수와 전후의 회수
Ⅵ. 나오는 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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