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보미 (중앙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국제정치학회 국제정치논총 국제정치논총 제54집 제3호
발행연도
2014.9
수록면
211 - 245 (35page)
DOI
10.14731/kjir.2014.09.54.3.211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이 연구는 북한의 4대 군사노선의 완성 과정에서 중소분쟁이 미친 영향을 분석하여 북한과 중국, 북한과 소련의 관계가 안보-자율성 교환이라는 비대칭동맹의 딜레마로는 설명될 수 없는 특수한 사례로 전환되었음을 증명하려 하였다.
1950년대 말부터 시작된 중소분쟁은 1962년에 접어들면서 걷잡을 수 없이 격화되었다. 그동안 대외안보를 중국과 소련에 의지하여 왔던 북한은 사회주의 진영의 분열이 약소국에 대한 안전보장의 약화로 이어지자, 자체적인 군사력 증강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특히 1962년 말 소련의 군사적 지원 중단으로 북한은 중국에 편승하기로 결정하고 국방력 강화에 힘을 기울였다. 이 같은 결정은 1962년 12월 10일, 조선로동당 중앙위 제4기 제5차 전원회의에서 국방에서의 자위와 병진노선 채택으로 나타났으며, 4대 군사노선 중 전군의 현대화를 제외한 일부 군사노선이 우선적으로 제시되었다. 북한은 중국에 편승하여 경제·군사적 실리를 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였다. 그러나 변화하는 국제정세 속에 북한의 안보위협은 더욱 고조되었고 설상가상으로 진영 내에서도 외교적 고립 위기에 처하였다. 결국 북한은 흐 루시초프의 실각을 계기로 대소접근을 시도하고 소련과 해빙기를 맞이했다. 소련 과의 관계 회복으로 북한은 비로소 소련으로부터 현대적 장비를 수입하고 조선인 민군의 현대화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국제관계에서 편승의 대가를 깨달은 김일성은 1966년 10월 제2차 당대표자회에 서 중소분쟁에서 중국과 소련 어느 곳에도 치우치지 않을 것을 주장하는 자주노선 을 공식 외교노선으로 선언하였다. 이와 함께 전군 현대화를 추가한 4대 군사노선 을 완성하고 국방과 경제의 병진노선을 재확인하였다. 결국 중소분쟁이라는 비대 칭 동맹의 관계 이완은 북한의 자율성 상승을 야기하였지만 강대국이 제공하는 안 전보장의 약화와 함께 ‘낮은 수준의 안보-자율성 교환’을 초래하였다. 그러나 군의 현대화와 병진노선의 적용은 북한의 경제·군사 부문에 엄청난 희생을 치를 것을 요구함으로써 북한의 경제에 먹구름을 띄웠다.

목차

Ⅰ. 서 론: 비대칭동맹의 특수사례
Ⅱ. 중소대립과 군사노선의 등장
Ⅲ. 전군 현대화를 위한 움직임
Ⅳ. 4대 군사노선의 완성과 병진노선 확립
Ⅴ. 결론
참고문헌

참고문헌 (54)

참고문헌 신청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5-340-0027285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