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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李昌鉉 (江原考古文化硏究院)
저널정보
한국문화사학회 문화사학 文化史學 第41號
발행연도
2014.6
수록면
69 - 107 (3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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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강원지방에서 확인된 신라주거지에 대한 현황을 살피고 단계설정 및 편년을 시도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신라의 강원지방 진출과정을 역사적 사실과 함께 검토하였다.
강원지방 신라주거지의 분포특징은 시기적·지역적으로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 신라세력의 진출시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신라주거지의 등장은 영동지역인 강릉에서 확인되며 그 시기는 4세기 중·후반경에 해당한다. 이 단계의 고고학적 특징은 전단계의 중도유형문화가 서서히 해체되고 신라주거지로의 대체과정을 거친다. 유구는 평면 呂·凸자형 주거지 내에 중앙식(점토띠식, 무시설식)노지가 위치한 주거지에서 평면 (장)방형 주거지 내의 모서리에 부뚜막식 노지가 채택된 형태로의 변화가 확인된다. 유물은 전통적인 중도식토기가 해체되고 새로이 신라 중앙에서 유입된 토기가 반출되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시기의 변화양상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공존과 대체과정을 거치는지는 명확하지 않아 향후 자료의 증가에 따라 전단계의 문화가 얼마간 공존될 가능성은 열려 있다.
5세기대를 거쳐 6세기 전반대까지의 신라주거지 역시 영동지방에서만 확인되고 있다. 유구는 평면 방형에 부뚜막식 노시설을 갖추고 있는 주거지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출토유물은 적갈색 연질토기(장란형·심발형토기)의 타날방법에 있어 이전 단계의 격자타날은 거의 사라지고 승문·평행타날로 대체된다.
6세기 중반이 되면 춘천을 중심으로 영서지방에서도 신라주거지가 축조되기 시작한다. 구체적으로 우두동C 유적에서 아직 인화문토기가 출현하기 이전 단계에 해당하는 주거지가 축조되기 시작하는데 이는 진흥왕대(551년)의 10군 공취 기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파악된다. 이후 선덕여왕 및 진덕여왕대의 우두주가 설치되는 7세기 중반대까지 우두동, 근화동, 송암동, 현암리 등지에서 꾸준하게 신라주거지가 축조된다.
7세기 후반경이 되면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역사적 배경을 맞이하게 되는데, 전단계에 이어 춘천의 각 유적에서 주거지가 지속적으로 조성되고 있으며, 새로이 홍천 성산리에서도 주거지가 축조되기 시작한다. 주거지의 구조는 전단계와 유사하고 출토유물은 인화문토기가 성행하다가 8세기 중반대가 되면 서서히 쇠퇴하기 시작한다.
8세기 후엽 이후에는 춘천 우두동 유적과 홍천 성산리 유적을 제외하면 점차 주거지의 축조가 단절되어 가며 새로이 영월지역에서 이 단계의 주거지가 확인되고 있다. 출토유물은 나말여초양식 토기가 확인되고 주거지의 구조는 이 단계까지 큰 변화가 없으나 내부의 노시설이 ‘ㄱ’자형에서 ‘T’자형으로 변화해간 것으로 보인다.

목차

요약
Ⅰ. 머리말
Ⅱ. 調査現況 및 檢討
Ⅲ. 特徵 및 分析
Ⅳ. 段階設定 및 編年
Ⅴ. 住居資料로 본 新羅의 江原地方 進出過程
Ⅵ. 맺는말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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