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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우수진 (연세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근대문학회 한국근대문학연구 한국근대문학연구 제28호
발행연도
2013.10
수록면
403 - 437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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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성좌는 1916년 3월 신파극의 개량을 내세우며 창립공연으로 〈코르시카의 형제(The Corsican Brothers)〉를, 약 한달 뒤 부활 의 번역극인 〈카츄샤〉를 무대에 올렸다. 〈카츄샤〉의 원작은 엄밀히 말해 앙리 바타이유(Henry Bataille)의 〈부활(The Resurrection)〉(1902)이었다. 시마무라 호게츠(島村抱月)는 이를 1908년에 번역 재궁성하여 예술좌에서 공연했고, 예성좌에서는 1915년 내한했던 예술좌의 공연을 참고하여 공연했던 것이다.
〈코르시카의 형제〉는 ‘잘 만든 신파극’이었지만, 전적으로 새로운 작품은 아니었다. 복수극은 기존의 신파극에서 가정극과 함께 가장 많은 인기와 비중을 차지하는 익숙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서구적인 무대와 의상의 번안극은 이미 1914년 혁신단의 〈단장록〉에서부터 시도되고 있었다. 이제 연극적 새로움은 더 이상 번안극의 몫이 아니었다.
예술좌의 〈부활〉과 예성좌의 〈카츄샤〉는 톨스토이의 부활 을 각색한 프랑스의 극작가 앙리 바타이유의 〈부활〉을 원작으로 했다. 당시 서구에서 톨스토이의 부활 은 가장 뜨거운 문화적 아이콘이었다. 앙리 바타이유의 〈부활〉은 1902년 가을 파리의 오데옹 극장(Theatre de Odeon)에서 초연되었으며, 다음 해인 1903년 2월 18일에는 히즈 마제스티 극장(His Majesty’s Theatre)의 경영자이자 소유자, 그리고 배우였던 허버트 비어봄트리(Mr. Herbert Beerbohm Tree)에 의해 런던과 뉴욕에서 동시 공연되었다. 당시 런던 유학 중이었던 시마무라 호게츠 역시 히스 마제스티 극장 안에서 〈부활〉을 지켜보았으며, 십여년 후 그는 예술좌를 창단하여 〈부활〉을 번역 재각색하여 공연했다. 예술좌의 〈부활〉은 1915년 우리나라에 내연(來演)하였는데, 그로부터 약 6개월 후 예성좌의 〈카츄샤〉가 단성사에서 공연되었다.
앙리 바타이유의 각색은 카츄샤의 참회와 개량의 과정을 강조하는 멜로드라마였으며 공연은 대성공이었다 . 동경 예술좌의 〈부활〉 역시 대성공이었지만, 여기에는 톨스토이와 부활 의 유명세 못지않게, 극중가인 〈카츄샤의 노래〉가 유행하면서 발생시킨 ‘카츄샤 신드롬’이 더 크게 작용했다. 그리고 이는 우리나라의 예성좌 〈카츄샤〉 공연에서, 톨스토이와 부활 자체보다 〈카츄샤의 노래〉의 강조로 전도되었다. 이후, 본격적으로 신극운동을 자처한 토월회와 극예술연구회의 공연에서도 카츄샤는 언제나 그 전경(前景)에 서 있었다.
예성좌의 〈카츄샤〉는 드라마투르기적으로 기존의 신파극, 특히 ‘가정비극류’ 신파극이 보여주었던 가정극 멜로드라마(domestic melodrama)와는 다른 종류의 멜로드라마였다. 〈카츄샤〉가 대중적인 멜로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신파극 레퍼토리로 인식되지 않았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특히 카츄샤는 새로운 유형의 여주인공으로서, 사생아로 태어나 하녀로 자랐으며, 네플류도프의 사생아까지 낳은 후에는 창녀가 되었다. 게다가 카츄샤의 도덕성마저 그리 강한 편이 아니었다. 그녀는 네플류도프의 유혹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았지만 끝까지 거부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아이를 잃은 후에는 손쉽게 창녀의 삶에 빠지고 말았다. 하지만 카츄샤는 참회와 개량의 과정을 통해 ‘개량된 인물(reformed character)’, 즉 도덕적인 인간으로 거듭 태어난다. 뿐만 아니라 가정극 멜로드라마의 여주인공처럼 네플류도프와 결혼하여 가정에 안착하지 않고, 평생 죄수를 위해 봉사하기로 결심한다. 이는 기존의 가정극 멜로드라마에서 통상 개인과 가정의 차원에 머물러 있었던 주인공의 고난과 해피엔딩을 공동체/사회의 차원으로까지 확장시키는 것이었다.

목차

1. 이제, 번안극에서 번역극으로
2. 예성좌의 번안극 〈코르시카의 형제〉, 그 절반의 성공
3.〈부활〉의 번역 공연과 그 경로 : 런던에서 동경, 그리고 경성으로
4. 결론을 대신하여 :〈카츄샤〉의 근대적 연극성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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