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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오경후 (동국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역사민속학회 역사민속학 역사민속학회 제28호
발행연도
2008.11
수록면
77 - 112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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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덕사지』는 만덕사(백련사)와 관련된 일련의 사실들을 면밀한 고증을 통해 찬술하였다. 다산은 사지 전권을 감정하는 소임을 맡았고, 그와 사제의 인연을 맺었던 아암 혜장을 비롯한 그의 제자들이 편집과 교정을 맡았다. 다산은 유배시기 동안 강진에서 그들과 폭넓은 교유를 가졌고, 학문을 가르친 스승이기도 하였다. 그 영향은 사지찬술에까지 이어졌다. 강목체로 구성되어 있고, 찬술방식 역시 일반사의 그것과 차이가 없다. 찬자들은 한국불교사에서 대표적인 신앙결사였던 고려 중후기 백련결사의 인물들을 중심으로 찬술하였다. 그들은 흩어진 기록들을 광범위하게 수집하여 불교사적 의미를 밝혔다. 오랜 시간이 흘러 수집이 용이하지 않았고, 불교에 대한 탄압과 소외는 여전하였지만, 불교사 복원과 만덕사의 역사적 가치를 강조하는데 소홀하지 않았다. 그들은 고려시대 자료에 대한 오류를 바로잡았고, 사라질 위기에 처한 자료를 수록하여 보존하고자 하였다. 찬자들은 동시대의 만덕사가 지닌 위상과 가치 역시 강조하였다. 그들이 찬술했던 조선시대 만덕사의 8대사는 조선후기 불교계에 유행했던 선교학의 대가들이었다.
8대사는 소요 태능의 문손들로 청허 휴정의 의발을 전수받은 이후 선교학의 종원임을 표방하고자 했던 대흥사의 종사나 강사로 손꼽히는 이들도 있었다. 『만덕사지』는 취여 삼우가 조선후기 만덕사를 중흥시킨 인물로 평가하고 있다. 수백 명의 대중들이 그의 화엄학 강의를 듣고자 운집했다고 한다. 그 가운데는 글을 몰랐던 화악 문신도 있었다고 한다. 이후 만덕사는 중흥의 기틀을 마련하였고 선교학에 조에가 깊은 승려들이 배출되었다. 비록 조선시대의 만덕사는 대흥사보다는 그 사세가 크게 낙후되었지만, 걸출한 인물들의 배출은 뒤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대흥사가 선교학의 종원을 표방한 것은 만덕사 승려들의 기여 또한 적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결국 『만덕사지』의 편찬은 전란이후 자주적 역사인식과 편찬의 소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자국사에 대한 독자적 인식과 정체성 강조는 우리나라 불교사에 대한 적극적 인식으로 이어져 광범위한 자료수집과 면밀한 고증을 거쳐 객관적 찬술을 시도한 것이다. 이것은 탄압과 소외로 망실된 불교사를 복원하는 역사적 의의도 지니고 있다.

목차

[국문요약]
1. 머리말
2. 戰亂과 寺誌撰述
3. 構成과 引用資料의 檢討
4. 內容分析과 佛敎史的 位相 强化
5. 맺음말
참고문헌

참고문헌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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