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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한형주 (고려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역사민속학회 역사민속학 역사민속학회 제28호
발행연도
2008.11
수록면
39 - 75 (3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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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15세기 朝-明관계를 외교의례의 시행과정과 분석을 통해 검토하고, 이를 통해 동아시아 조공-책봉관계의 성격을 찾아보려는데 그 목적이 있다.
고려 말 여-명 교류는 원명교체라는 대륙정세의 소용돌이 속에서 공민왕이 국권 수복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시작되었다. 양국관계는 명의 세력 확대와 고려의 자주적 입장이 상호 출동하면서 이후 우호와 갈등이 상호 교차되는 과정을 겪었다. 국가의례의 전래 역시 마찬가지여서, 祀典정비를 통해 새로운 천하질서를 모색하고 이를 蕃國에 강요하려는 명의 의도는 고려전기의 자주적 의례로 복구하려는 고려의 입장과 서로 충돌하였다.
親明事大를 내세운 조선왕조의 개창은 조-명 관계의 새로운 계기가 되었다. 그렇지만 초창기의 양국관계는 여진족의 주도권 쟁탈로 원만하지 못했고, 그 결과 태조 이성계는 誥命조차 받지 못하였다. 그런데 대조선 강경책을 썼던 주원장이 사망하고 곧이어 叔姪간에 피비린내 나는 내전에 휩싸이면서 명의 대조선 정책은 바뀌었다. 새로 즉위한 혜제는 戰馬를 비롯한 조선의 도움을 받기 위해 서둘러 태종의 고명을 보내는 동시에 조선왕의 위차를 親王으로 높였다. 親王禮의 사여는 명의 外蕃중에서 최혜국 대우로, 조선에 대한 일체의 간섭을 배제했음을 뜻한다. 아울러 문종 즉위년에는 세자의 位次 역시 친왕 세자에 맞추어 인정하였다. 이 과정을 겪으면서 조선의 국가의례는 親王禮를 기준으로 모색ㆍ정비되었던 것이다.
대명의례는 양국 사신의 평화로운 내왕과정에서 明禮가 참작되어 제정되었다. 현재 『세종실록』오례와 『국조오례의』에는 명과 관련된 의식이 빈례조와 가례조에 각각 수록되어 있다. 그런데 『고려사』에 외국사신을 맞이하는 의식이 모두 빈례조에 수록된 반면 조선의 빈례에서는 명 사신과의 宴會 및 일본, 유구 등 사신과의 의식들만이 보일 뿐 정작 명과의 사대관계를 보여주는 의식은 가례조에 수록되었다.
빈례와 가례의 구분은 조선왕조의 이중적인 세계관이 국가의례를 통해 드러난 것이다. 가례에 수록된 望闕ㆍ迎詔ㆍ迎勅ㆍ拜表 등의 의식은 황제의 권위를 바탕으로 시행됨으로써 명 중심의 동아시아 세계질서를 인정하였다. 반면에 정작 외교의례인 빈례에서는 명 사신과의 대등한 의식 및 일본, 유구, 여진 등을 대상으로 조선왕의 우월적 입장을 보이는 의식만을 수록함으로써 조선 중심의 세계관을 보인 것이다.

목차

[국문요약]
1. 머리말
2. 고려말 對明儀禮의 모색
3. 親王禮의 설정 및 왕실 位次의 상승
4. 『國朝五禮儀』에 수록된 대명의식의 내용과 성격
5. 맺음말
참고문헌

참고문헌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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