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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종서 (울산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역사민속학회 역사민속학 역사민속학회 제24호
발행연도
2007.6
수록면
41 - 68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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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기 상류 주택은 우뚝하게 높고 마루방이 많은 것이 특징이었다. 온돌이 일부 설치되었지만 대부분의 주거공간은 공중에 뜬 마루방으로 지어졌다. 궁궐을 포함한 상류주택에서 온돌은 1600년을 전후한 시기에 급속히 확산되어 보편적인 난방방식이 되었다.
온돌이 보편화되기 전에는 방바닥에 털로 짠 毛氈이나 마른풀로 짠 돗자리를 깔고 살았다. 모전보다는 돗자리가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다. 돗자리는 실내 전체를 덮은 ‘鋪陳’과 침석이나 방석 역할을 하는 ‘蒲團’이 있었다. 돗자리는 여름철의 습기와 겨울철의 냉기를 막는데 중점을 두고 제작되었다. 재료는 부들이 많이 사용되었다. 조선후기 기록에서는 일본의 다다미처럼 두터운 ‘등매석’이 있었음이 확인된다. 조선전기 상류주택의 실내에도 등매석처럼 두텁게 짠 자리를 깔았을 것이다.
고려~조선전기까지는 세발솥[鼎]과 풍로를 이용하여 음식을 조리하였다. 세발솥과 풍로는 기록에서 자주 확인될뿐더러 그림과 출토된 실물이 남아 있어 구체적인 모습까지 알 수 있다. 세발솥과 풍로는 고려~조선전기의 보편적인 취사도구였다.
공중에 들린 마루방, 두툼한 깔개, 세발솥과 풍로를 사용한 것은 온돌이 보편화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급속히 보편화된 온돌은 방을 덥히는 데 그치지 않고 주택의 구조와 방한 및 취사도구까지 규정하였다. 마루방을 소멸시키고, 깔개를 얇게 했으며, 취사장소를 고래 앞 부뚜막으로 고정시켰다.

목차

요약
1. 머리말
2. 조선전기 상류 가옥의 구조와 온돌 보급 정도
3. 바닥의 방한 설비
4. 취사용구 : 세발솥[鼎]과 풍로[?]
5.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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