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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徐仁源 (한성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역사민속학회 역사민속학 역사민속학회 제29호
발행연도
2009.3
수록면
37 - 67 (3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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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여지승람』은 세종 조에 편찬된 지리지 이후, 변경된 사항을 바로잡기 위하여세조 조부터 시작하여 1477년에 양성지 등이 완성한?『팔도지리지』에 우리나라 문사들의 시문을 첨가하여 1481년(성종 12)에 50권으로 완성되었다. 이 책은 1485년(성종 16) 김종직 등에 의해, 1499년(연산군 5) 임사홍·성현(成俔) 등에 의해 2차에 걸쳐 교정과 보충이 이루어졌으며, 중종 조에는 새로운 보충 작업이 시도되어 『신증동국여지승람』으로 전해지고 있다.
『동국여지승람』의 편찬을 주도했던 인물은 조선 초기 세종·문종·단종·세조·예종·成宗의 6대 왕조를 거치면서 군주의 신임을 두터이 받은 양성지였다. 그는 조선 초기 훈구파들 중에서도 변계량과 함께 가장 강력한 자주주의자였다. 따라서 그는 민족주의적 역사인식과 지리인식을 바탕으로 天祭에 대한 거행을 주장하는 등 자주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양성지는 단군을 신화 상의 인물로 파악하지 않고, 실제 인물로 파악하면서 중국과 대등한 역사의 시작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우리도 중국처럼 제천 행사를 단독적으로 치루자고 함으로써 중국에 예속되지 않은 자주 독립 국가임을 강조하였다. 지리에서는 요동에 이루는 광활한 영토가 우리의 땅임을 강조하면서 언젠가는 수복할 지역으로 강조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은 양성지의 역사·지리·문화의 자주적 의식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동국여지승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두 차례에 걸친 수찬과 한 차례에 걸친 신증으로 인하여 양성지의 자주의식을 부분적으로 밖에는 파악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목차

[국문요약]
1. 머리말
2. 朝鮮 初期 支配 階層의 自主意識
3. 『東國輿地勝覽』과 梁誠之의 自主意識
4.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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