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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정보
전명혁 (한국외국어대학교)
저널정보
경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마르크스주의 연구) 마르크스주의 연구 마르크스주의 연구 제5권 제3호 (통권 제11호)
발행연도
2008.8
수록면
177 - 196 (2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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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해방 후 남로당의 2인자였던 이강국의 활동을 주로 1930년대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이강국은 한국전쟁 직후인 1956년 ‘국가전복 음모 및 반국가적 간첩테러 사건’으로 박헌영과 더불어 처형당했다. 그는 한국근현대사에서 매우 비중 있는 인물이지만 일제하 그의 삶과 활동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필자는 최근 이우한(李愚漢)이란 필명으로 된 이강국의 글 몇 편에서 독일 유학 직전 그의 사회인식과 정세관을 파악할 수 있었고, 일본의 연구에서 이강국이 독일 유학 시 ‘혁명적아시아인협회’에 깊숙이 관여했음을 알 수 있다.
이강국은 베를린 유학 시기 독일공산당에 관여하여 당시 독일공산당과 코민테른의 주요 결정과 테제들을 신속히 국내에 전달하여 당시 한국사회주의운동의 정세인식에 일정한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인민전선론에 대해 그는 한국에서 선구적 이론가였다. 그러나 그의 인민전선론 인식은 당시 코민테른 정책의 혼란, 즉 6차 대회에서 7차 대회로의 ‘전술전환’을 그대로 수용했다는 점에서 한계를 가진다. 이후 이강국의 인민전선론은 해방 후 ‘민주주의민족전선’ 구상에 그대로 반영됐다.

목차

1. 머리말
2. 이강국과 ‘혁명적아시아인협회’
3. 이강국의 정세인식과 ‘원산그룹’
4.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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