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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허권수 (경상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인물사연구회 한국인물사연구 한국인물사연구 제10호
발행연도
2008.9
수록면
327 - 358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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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宇 郭鍾錫(1846~1919)은 개화 일제시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학자요, 유림의 지도자였다. 1919년 파리평화회의가 개최 되었을 때, 그는 우리나라 유림의 대표로서 나라의 독립을 청원하는 巴里長書를 보내었다.
?宇는 총명한 자질을 타고난 데다 근면하게 노력하여 학문적으로 大成한 인물이다. 그는 당시 부모의 권유로 科擧에 응시하기도 했지만, 시대적으로 仕宦할 수 있는 때가 아니라고 하여, 爲己之學에 전념하면서 교육활동과 저술활동을 활발히 하였다.
그는 文弱한 선비가 아니고 풍부한 經綸을 갖춘 通儒였다. 그리고 潔身長往하는 태도를 취한 것이 아니고, 비록 벼슬에 나가지는 않아도 국가에 큰 일이 있을 때는 늘 上疏등을 통하여 자신의 견해를 개진하여 나라를 구하려고 하는 선비의 憂患意識을 발로하였다. 義兵活動에만은 시종 신중한 자세를 견지하여 倡義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애국하는 정신은 투철하였다.
그는 2천 수에 가까운 시를 남겼는데, 그의 시에는 그의 선비정신이 잘 나타나 있다. 곧 世道를 技植하려는 사상, 憂國憐民의 사상, 人材敎育의 필요성 등이 풍부하게 담겨 있다.
그는 學統으로 볼 적에 退溪學派에 속하지만, 지역적으로 볼 적에 南冥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고, 南冥을 매우 尊崇하여 마지 않았다. 그는 학파나 지역을 초월하여 유림을 규합하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은 인물이다.
그는 평생 동안 8백여 명에 달하는 많은 제자를 길러 우리 민족의 전통학문이 후세에 계승되게 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 그의 학통은 오늘날까지도 면면히 계승되고 있다.
그가 남긴 地負海涵의 저서를 깊이 있게 연구한다면, 그의 詩文學, 性理學, 政治學, 敎育學 등을 심도 있게 밝힐 수 있고, 그의 學問과 思想의 偉大性이 세상에 널리 알려질 수 있을 것이다.
그의 學問과 思想의 깊이와 넓이는 곧 大韓民國 學問을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自尊心이라 할 수 있다. 우리 민족이 낳은 위대한 학자의 한 분인 ?宇 郭鍾錫 같은 분의 학문과 사상은 정밀하게 연구되어 그 좋은 점이 오늘날 되살려져야만, 우리 민족문화가 한 단계 더 높아 질 수 있을 것이다.

목차

【국문요약】
Ⅰ. 머리말
Ⅱ. 生平의 行蹟
Ⅲ. 行身治學과 憂國情感
Ⅳ. 著述活動과 光復運動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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