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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조윤선 (청주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인물사연구회 한국인물사연구 한국인물사연구 제10호
발행연도
2008.9
수록면
289 - 326 (3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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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관료이자 실학자적 사고를 가진 유수원은 『우서』를 통해 정치, 사회 전반에 걸친 개혁안을 제기했고 영조에게 지어 바친 「관제 서승도설」을 통해서는 당쟁의 주된 원인이라고 본 이조 전랑의 통청권 폐지와 한림 추천권 개선책을 개진하였다. 이는 실제 현실화하여 『속대전』에도 실리기까지 하였으나 소론이라는 가계적 배경과 노론의 집권에 방해가 될 수도 있는 그의 관제 개혁론 때문에 결국 정계에서 물러나게 되었고 그의 개혁안은 무산되었다.
『우서』에서 중앙 관직의 전문성의 부족, 적합한 인재의 부족, 소송 절차를 무시하는 월소의 만연과 이에 관련된 비변사의 월권행위, 지방 감사의 자의적인 贖錢 유용 등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더불어 臺官이 관여함으로 인해 추국 사건이 정치적인 입김에 좌우되며 대관이 자의적으로 죄인의 생사여탈권을 가지게 되는 추국청 운영의 문제점을 짚었고 이에 대한 시정 방안 역시 제시하였다. 그러나 결국 영조 31년을해역옥사건에 연루되어 추국청에 붙잡혀 온 후 충분한 심문과 증거없이 준소의 당색이라는 이유로 이틀 만에 능지처참되었고 그의 아들 삼형제가 모두 연좌되어 교형에 처해졌다. 시대적인 선각자였던 농암 유수원은 소론과 노론의 명목적인 탕평, 노론 주도의 정국 속에서 희생되었으나 그가 제시한 다양한 분야에서의 개혁안, 특히 법제도 개혁안은 당시의 문제점들에 대한 올바르고 현실적인 시정책이었다.

목차

【국문요약】
Ⅰ. 머리말
Ⅱ. 유수원의 정치적 행보와 「官制序陞圖說」
Ⅲ. 조선 후기 司法制度에 대한 유수원의 생각
Ⅳ. 영조 31년 乙亥逆獄사건과 유수원의 최후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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