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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全德在 (경주대)
저널정보
국립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 도서문화 도서문화 제28집
발행연도
2006.12
수록면
441 - 498 (5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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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낙동강 유역에 위치한 조선시대 포구와 나루의 변천을 고찰한 것이다. 古代에 낙동강유역에 위치한 나루들은 신라가 가야 및 백제와 낙동강을 경계로 접전을 벌일 때에 전략적 요충지로 활용되었고, 고려시대에는 낙동강 수로를 이용한 선박들의 寄港地로서 주로 활용되었다. 특히 창녕읍 남지읍 용산리와 부산 광역시 북구 화명동 용당마을에 위치한 두개의 伽倻津에서는 龍堂(伽倻津溟所와 伽倻津衍所)을 짓고 龍神에게 제사를 지내 선박과 선원의 무사 안전을 기원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 田稅穀을 운반하는 경로나 倭使의 往還路에 위치한 낙동강가의 나루들이 주목을 받았고, 조선후기에 漕運制度의 변천으로 전세곡을 積載한 배가 출발한 나루나 漕倉이 설치된 포구와 나루, 그리고 수로와 육로교통의 결절점에 위치한 포구와 나루들이 교역중심지로 성장하였고, 19세기 후반에 낙동강 수로를 통행하는 선박들이 급증하자, 각 衙門이나 宮房 등에서는 선박들의 移出入이 잦은 포구와 나루에 收稅所를 설치하여 通過稅를 징수하기도 하였다. 조선후기에 낙동강가에 위치한 포구와 나루들이 교역중심지로 성장한 것은 영남 내륙지방에서 이들을 중심으로 상품화폐경제가 먼저 발달하여 주변으로 확산되었음을 시사해주는 것이다.

목차

【논문개요】
Ⅰ. 머리말
Ⅱ. 조선 전ㆍ중기의 포구와 나루
Ⅲ. 조선후기 漕運制度의 변천과 포구ㆍ나루의 盛衰
Ⅳ. 맺음말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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