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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홍성욱 (동국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동학학회 동학연구 동학연구 제29집
발행연도
2010.11
수록면
37 - 78 (4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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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이후 남한산성 증축은 인조 16년(1638년) 일본의 조선 침략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시작되었다. 이때 증축은 일본의 침략을 대비하고 병자호란 이후 설추된 국왕의 권위 회복을 목적으로 仁祖의 주도하에 추진되었다. 병자호란의 패배로 청나라 황제에게 항복한 인조는 당시 군주로서의 권위가 실추된 상황이었다. 때문에 일본의 조선 침략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대외적인 긴장감을 조성하였고 일본의 침략을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남한산성 개축을 주도하면서 실추된 권위를 회복하려 하였다. 이러한 배경으로 축조된 남한산성의 남장대 옹성은 이후 청나라의 요구에 의해 철거되었고 이후 남한산성의 증개축은 더 이상 추진되지 못하였다.
이후 남한산성의 대대적인 증개축이 진행된 것은 숙종대로 봉암성, 한봉성, 신남성 등 외성이 축조되었다. 숙종 대 남한산성 외성은 집권세력의 변화와 함께 순차적으로 축조되었으며, 집권세력들이 남한산성을 자신들의 군사적 기반으로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 외성 축성을 추진하였다.
봉암성은 서인 집권기인 숙종 12년(1686년)에 축조되었다. 당시 서인들은 숙종 9년(1683년) 남한산성을 관할하던 수어사를 혁파하고 광주 유수로 남한산성을 통제하게 함으로 남한산성에서 서인들의 영향력을 강화시켰다. 따라서 봉암성은 남한산성에 대한 서인들의 영향력 강화와 병자호란 당시 노출된 방어상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목적으로 축조되었다.
한봉성은 숙종 19년(1693년) 기사환국으로 재집권한 남인들의 주도로 축조되었다. 당시 기사환국으로 집권한 남인들은 숙종 9년에 혁파된 守禦使를 부활시켜 남한산성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강화하였다. 이러한 조치는 남한산성에서 서인들의 영향력을 제거하고 남한산성을 자신들의 세력기반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에서 축조된 한봉성은 남한산성에서 남인들의 영향력을 강화시키기 위한 목적에서 추진되었다.
신남성은 서인 집권기인 숙종 45년(1719년)에 민진후에 의해 개축이 추진되었다. 신남성 개축 당시 조선에서는 외적의 침략에 대응하는 방어전략이 수정되었다. 따라서 이때 개축된 신남성은 도성방어에 필요한 방어거점으로 남한산성의 기능이 인식되면서 기존에 노출된 남한산성의 방어상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신남성 개축이 추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목차

한글 논문개요
영문 논문개요
Ⅰ. 머리말
Ⅱ. 숙종 이전의 남한산성의 축조
Ⅲ. 대외정세의 변화와 남한산성의 정비
Ⅳ. 정국 변화와 남한산성 외성 축조
Ⅴ. 맺음말

참고문헌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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