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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白種俉 (충주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문화사학회 문화사학 文化史學 第35號
발행연도
2011.6
수록면
133 - 159 (2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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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은 元城?甕城?外城으로 나누어진다. 원성은 신라시대 축성된 주장성과 겹치는 부분으로 생각되어지며, 인조 2년(1624년)에서 4년(1626년)까지 수축되었다. 甕城은 5개로 連珠峰甕城만 원성을 쌓을 때 축조된 것이고 나머지 4개의 옹성은 병자호란 이후 화포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외성(外城)은 동쪽의 蜂巖城과 漢峰城이, 서쪽에는 新南城이 각각 자리한다.
『重訂 南漢誌』에 의하면 신남성 동?서돈대는 영조 29년(1753년)에 수축되었으며 병자호란 당시 청군이 이곳을 점령하여 대포 7, 8문을 앉혀 놓고 방포하였던 곳이라 전한다. 이로 인해 신남성=남격대=대봉의 등식이 성립되었고 우리는 아무런 포루가 설치되어 있던 특정 지점을 지칭하는 말이 된다. 이후 숙종대에 이르면 남격대는 성에 붙어있는 시설이 아니라 성 밖에 위치한 방어시설을 이르는 말로 바뀌게 됨으로써 적을 방어하는 방어 전면을 일컫는 말로 풀이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남한산성의 외성이 축성된 봉암, 한봉, 검단산은 병자호란 당시 청군에 점령당함으로 인해 성안이 감제되게 된다. 당시 산성 방어의 핵심은 주요 감제고지에 대한 방어를 통해 외부로부터의 위협을 최소화 하고 동시에 지금의 신남성이 자리 잡은 이현봉을 확보함으로써 삼남지방과의 통신 및 지원 물자의 보급로를 확보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신남성은 외성 가운데에서도 감제고지에 대한 장악과 삼남과 연결되는 교통로를 확보한다는 목적으로 볼 때 남한산성 수축의 핵심적인 요소로 부각될 수 있다.

목차

요약
Ⅰ. 머리말
Ⅱ. 新南城의 構造 및 現況
Ⅲ. 文獻을 통해 본 新南城과 南格臺
Ⅳ. 新南城과 南漢山城
Ⅴ. 맺는말
Abstract

참고문헌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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