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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경성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인문학논총 인문학논총 제13집 1호
발행연도
2008.2
수록면
143 - 174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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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발해국의 주민구성에 관한 주장을 한국 및 필자와 중화인민공화국측의 주장들을 대비하면서 발해국의 고구려계승성을 주장한 논문이다. 필자가 지금까지 연구해 왔던 발해국의 주민구성에 대한 내용을 중심으로 종합 보완하면서 최근 중국학자들의 견해를 재반박하는 내용을 주로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한·중·일의 주민구성 연구를 개관하고 중국과 같이 발해인의 종족계통을 말갈로 보는 주장들을 비롯해서 대조영의 출자와 발해 초기의 국호 및 국호의 당나라 사여설(賜與說), 발해족 형성론 그리고 일본과 한국학계의 지배층=고구려유민, 피지배층=말갈설의 내용을 비판적으로 소개하고 발해국이 고구려를 계승한 왕조였음을 주민이나, 영토, 문화적 계승관계를 통해서 논증하였다. 기록상으로 본 고구려·발해와 말갈도 별개가 아님을 여러 사료들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말갈’은 당·송대인들이 그들의 동북방주민들을 범칭, 비칭하였던 종족명이었고, 고구려의 피지배주민들의 비칭이었다. 말갈을 피지배주민들에 대한 비칭으로 보는 자세는 『삼국사기』에도 반영되어, 중국측 기록과 달리 동명성왕대에까지 말갈이 등장하는 결과를 낳았다. 따라서 한국 및 중국사에서‘말갈’족의 존재를 ‘고구려’와 따로 구별하여 인정하는 것부터가 문제이다. 만주지역에서 스스로 왕조를 개창하여 국호를 선포하였던 조선, 부여, 고구려가 그들의 종족명에 더 가깝고, 왕조 개창에 성공하지 못하였던 흑수인들의 경우만을 ‘말갈’ 또는 ‘흑수말갈’로 부르는 것이 더 타당하다. 그렇다하더라도 동양사에서 이미 일개 종족명으로 그 시민권을 획득한 ‘말갈’을 존중한다면, ‘고구려말갈’(속말말갈과 백산말갈 등과 같이 고구려주민이자 고구려계인 말갈)과 ‘흑수말갈’(고구려계가 아닌 말갈)로 나누어 부름이 타당하다.
필자는 이와 같은 입장이 말갈의 종족계통과 고구려와의 정치적 관계에서만이 아니라, 언어와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입증될 수 있다고 보았다. 발해인들의 언어에 대해서는 명확한 기록이 없어 불분명하지만, 발해어가 고구려어를 계승했다는 사실은 발해가 고구려와 풍속이 같았다는 『구당서』 기록과 그들의 이름을 통해서도 짐작이 가능한 것으로 보았다.
한편 문화적인 측면 특히, 『구당서』에서 고구려인의 주거특징이었다고 전하는 온돌장치가 발해주민의 유적에서 발견되고 있는 점 등은 문화적으로도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였다는 증거들이라고 간주하였다. 토기의 구분기준에 있어서도 말갈을 이민족시하는 잘못이 있음도 지적하였다. 말갈토기를 돌림판을 쓰지 않고 낮은 온도에서 제작된 것으로 간주하는 이른바 ‘말갈관’은 고구려나 발해의 변방주민들의 저급한 생활문화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이지 고구려와 다른 이민족의 문화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목차

〈한글요약〉
1. 머리말
2. 한ㆍ중ㆍ일의 주민구성 연구
3. 주민구성을 말갈로 보는 주장
4. 고구려ㆍ발해와 말갈
5. 발해인의 고구려 계승성
6.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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