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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최병택 (공주교육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한국기독교와 역사 한국기독교와 역사 제32호
발행연도
2010.3
수록면
227 - 262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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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일제하~1950년까지 한센병 환자 수용 시설인 애양원의 환자 수용정책과 그 영향을 다룬 글이다. 그동안 일제하 기독교 선교사들의 한센병 환자 수용 시설이 환자들을 외부사회와 격리함으로써 환자들의 인권을 침해하였다는 비판적 시각이 있어왔다. 그러나 기독교계의 한센병 수용 시설이 그 활동을 시작할 무렵 전세계적으로 한센병에 대해서는 환자들을 격리하는 것이 유일한 대책이었다. 이 점에서 환자들을 격리하였다는 것만으로 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서구에서는 한센병 환자를 ‘죄’로 인해 병을 얻게 된 자로 규정하고 이를 차별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선교사들은 환자들을 병을 통해 복음을 접하게 된 ‘선택된 자’로 여기는 경향을 보였다. 애양원의 ‘격리’ 방침은 환자가 외부인을 접촉함으로써 병을 옮기지 않도록 하는 그야말로 전염병 예방 차원에 머무르는 것으로 환자들을 평생 격리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고, 완치될 경우 환자들은 자유로이 퇴원할 수 있었다. 그러나 환자들이 퇴원 후 격심한 사회적 편견속에 살아갈 길이 사실상 없었으므로 대부분의 환자들은 경제적 안정이 보장된 애양원에 남기를 원하였고 이 때문에 애양원 내 환자 구역은 비교적 안정된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었다.
이 환자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고 규율하는 역할은 교회에 주어져 있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병이 완전히 치유될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주는 방식으로 환자들로 하여금 신앙생활에 더욱 전념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 속에서 애양원 수용자의 상당수는 외부와 단절된 채 개인적 신앙생활에 매달리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1960년대에 정착촌으로 이주할 당시 경제적, 사회적 기반을 마련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목차

1. 머리말
2. 애양원의 설립과 개방적 환자 수용정책의 채용
3. ‘상대적 격리주의’로의 전환과 환자 ‘자치 공동체’의 형성
4. 교회를 중심으로 한 ‘생활지도’의 강화
5. 맺음말
참고문헌
한글초록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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