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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변광석 (부산대학교)
저널정보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한국민족문화 한국민족문화 제33호
발행연도
2009.4
수록면
39 - 73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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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장은 인근 동래ㆍ김해ㆍ양산과 함께 일본군의 초기 진격로였다. 전쟁이 지속되면서 일본군은 동남해안에 왜성을 축조하여 후방기지로 삼고, 병력과 물자의 공급기지로 활용하였다. 그 중 기장현에는 죽성 왜성과 임랑포 왜성이 있었는데, 다른 주요 왜성근거지와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많은 민간인과 각종 기술자들을 납치해 나가는 창구역할을 하였다.
최근 조사에 의하면 기장에서 조사한 가마터(도요지) 중에서 70%가 장안(長安)에 분포하고 있었다. 시기는 15세기 초~19세기에 걸쳐 고루 분포하고 있다. 특히 도자기의 제조시설과 파편의 유약이나 무늬는 다른 지역과는 구분되는 특징이 있다.
전쟁으로 인해 납치되어간 수많은 피로인 가운데 사기장ㆍ야장들도 있었다. 그 중에 사기장들은 일본에 연행되어 가서 주로 큐슈지역 정착지에서 평생 도자기를 만들며 살아갔다. 당시 이삼평을 비롯한 극소수를 제외하고 납치된 사기장들의 대다수는 이름을 알 수 없다. 다만 전쟁 때 납치를 주도했던 주요 번주의 가문서(家文書)에서는 도자기를 굽도록 피로인을 정착시켰다는 단편적인 기록만 있을 정도이다. 즉 피로인들을 자신들의 고향에 강제 이주시켜 사역노동이나 도자기업을 영위하게 했던 사실만 기록한 것이다.
피로인 사기장 중에서 경상도 출신지역으로는 부산, 김해, 사천 등이 주로 많았던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기장과 양산 일원에서도 납치되어간 피로인들이 있었다. 임란 당시 끌려갔던 많은 피로인 중에서 기장왜성을 축조한 구로다(黑田) 장수에 의해 납치되었던 핫산(八山)이라는 사람은 기장 출신 인물로 볼 수 있다. 그는 일본 후쿠오카에서 다카도리 가마(高取燒)를 창시하였다. 그런가 하면 아가노 도자기(上野燒)의 대표 사기장이었던 손카이(尊楷)라는 사람도 추론이 가능할 수 있겠다. 그렇지만 정확한 성명과 그들의 출신지를 알 수 없는 피로인 사기장들이 부지기수였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16세기 전후 기장현의 상황
3. 기장의 陶瓷와 沙器匠
4. 被虜人 사기장과 기장지역
5.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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