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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일민국제관계연구원 국제관계연구 국제관계연구 2005년 봄호 제10권 제1호 (통권 제18호)
발행연도
2005.3
수록면
235 - 268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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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한국전쟁 당시 김일성의 군사력 사용에 관련한 이전 사회주의 동맹국들로부터의 자료들을 상세하게 살펴보는 데에서 출발한다. 최근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김일성은 남한의 ‘해방’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남한에 대한 전면전을 결정하는 데에 있어 소련과 동맹국들의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한국전쟁 직후 미군이 남한에 주둔하게 되자 북한의 체제유지에 결정적인 지원을 하던 북한의 동맹국들은 계속해서 남한에 대한 전쟁은 실현 가능성이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1949년 3월 스탈린이 규정한 정칙(定則)은 중요한 허점을 가지고 있었다. 즉 북한이 남한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유리한 상황을 기다려야 하지만, 최소한 남한 및 미국의 공격으로부터 자국을 방어할 수는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틈새로 인해 김일성은 남한의 공격으로 위장된 도발을 시도하고 말았다.
러시아 문서보관소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1968년 1월의 김신조 청와대 피습사건과 푸에블로 호(號) 납치사건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자료에 의하면 김일성은 특공대의 기습이 남한에서 반란을 자극하고, 이어서 남한 내의 반란군이 북한에게 군사 원조를 당연히 요청하게 되는데, 이는 남한의 열성당원에 의한 것으로 잘 위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간첩 기습이 실패로 끝나자, 북한은 주의를 돌리기 위해 소련과의 상의 없이 푸에블로 호를 납치하였으며, 이는 미국의 공격에 대한 대응이라고 주장했다. 소련 지도부는 푸에블로 납치에 대한 보고를 받자, 이로 인해 미국과의 전쟁이 일어나는 것에 대해 두려워했다. 따라서 소련은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있는 노력을 다해야만 했다. 당시 모스크바에서는 김일성의 행동에 대한 불만이 매우 높았지만, 북한이 공산주의 진영 내에서 ‘아시아에서 미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최전선이자 최대 피해자’라는 특별한 지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은 계속해서 북한을 지지했다.
예전의 동맹국들을 상실하게 되면서 북한은 이제 이론적으로는 남한에 대한 군사적 행동을 취할 수 있는 자율성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구(舊) 동독 측의 자료에 따르면, 김일성 체제 후기에 북한의 지도부-김정일을 포함하여-는 미국의 핵무기가 군사적 해결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따라서 북한은 핵무기 개발이 미국의 대 북한 공격을 억지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결국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필수적인 전제조건은 미국이 북한을 군사적으로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목차

Ⅰ. Introduction
Ⅱ. Lessons of the 1950~53 War
Ⅲ. The Raid on the Blue House and the Seizure of the USS Pueblo
Ⅳ. The 1976 Ax Murders
Ⅴ. Late Kim Ⅱ Sungism
Ⅵ. Conclusion
[References]
[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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