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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연구 53
발행연도
2009.3
수록면
201 - 237 (3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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勿吉은 475년에 乙力支를 북위에 사신으로 파견함으로써 역사상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이래 572년 北齊에 대한 조공을 끝으로 이름이 사라진 滿洲지역의 북방종족이다. 5세기 중반 이후 세력을 키워 고구려와 충돌하면서 부여를 압박한 과정이 『魏書』 물길전에 실려 있어 대체적인 활동상을 알 수 있다.
물길의 전신은 3세기 전반 장광재령의 동쪽 목단강 유역에 거주하면서 부여의 압박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읍루의 일부로 추정되는데 이들이 서진하여 북위에 조공할 당시의 중심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길림성 扶餘市의 石頭城子 일대, 흑룡강성의 하얼빈 일대, 五常市, 依蘭縣 등이 그 예이다.
그런데 『魏書』 물길전에는 속말수란 강과 도태산이란 산이 물길의 중요한 산천으로 기록되어 있고, 기존에는 速末水=松花江, 徒太山=白頭山이라 간주하여 왔으나 여기에는 납득하기 어려운 몇 가지 문제가 있다. 백두산 일대가 물길의 경역에 포함된다면 고구려가 그 지역을 영유하지 못했다는 결론이 되는데, 이는 고구려의 성곽 분포 등을 통해 볼 때 받아들이기 어려우며, 물길의 중심지라 추정되는 지역과 백두산과의 거리도 400㎞ 이상이어서 도저히 동일권역으로 묶어내기 어렵다. 그 밖에 『三國遺事』와 『帝王韻紀』 등 고려시대 기록에 백두산의 북쪽 길림성 敦化市가 틀림없는 渤海의 건국지를 도태산과 같은 산으로 추정되는 太伯山의 남쪽이라 한 것도 간과하기 어렵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위서』 물길전에 기록된 도태산은 현재의 백두산이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물길의 중심지를 고구려의 龍潭山城이 있는 길림시보다는 북쪽에 있으면서 멸망 직전 부여의 중심지로 추정되는 農安 지역과도 아주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찾아 현재의 오상시 일대로 볼 경우, 물길의 도태산은 長廣才嶺의 중심에 위치하여 길림성과 흑룡강성의 경계를 이루는 大禿頂子山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된다.
충분한 검토가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5세기 이후 등장하는 도태산을 현재의 백두산으로 쉽게 단정할 경우 당시 만주지역 고대국가 및 종족의 활동범위에 대해 심각한 모순이 발생하는 것이 분명하므로 좀 더 다양한 각도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5세기 중반 勿吉의 성장과 중심지
Ⅲ. 5세기 중반 高句麗의 동북방 경역과 徒太山
Ⅳ. 맺음말
참고문헌
日文抄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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