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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藏書閣 제20집
발행연도
2008.10
수록면
117 - 142 (2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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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에서는 조선후기에 ‘풍천(風泉)’이 조선 고유의 문학적 술어로 관습화되는 과정을 구명하였다. 『시경(詩經)』의 「비풍(匪風)」과 「하천(下泉)」을 축약하여 만들어진 ‘풍천’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조선이 명을 높이고 청을 배척하고자 하는 정치적 논리를 마련하는 가운데 탄생된 신조어였다. 이 술어에 대한 검토는 조선 특유의 역사적 국면이 문학적 전개 양상에 끼친 영향을 살펴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제왕의 글쓰기인 영조(英祖) 어제(御製)가 ‘풍천’의 문학적 전개에 중요한 매개가 되었으므로, 본 연구를 통해 어제류(御製類)가 일반적인 문학사와 동떨어져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긴밀한 관련 속에서 이해할 수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시경 (詩經)』의 「육아(蓼莪)」, 「척호(陟岵)」, 「상체(桑?)」 등의 작품이 영조에게 왕실의 기억을 지탱해주는 끈이었고, 「실솔(??)」이 안일함을 경계하게 하는 지침이었다면, 「비풍」, 「하천」은 선왕들, 특히 효종과 숙종을 통해 계승되고 존명배청(尊明排淸)의 대명의리로 집약되는 ‘충’의 정서를 매개해 주는 중요한 작품이었다. 송시열의 「영릉지문(寧陵誌文)」에서 효종의 북벌정책과 관련하여 ‘비풍하천(匪風下泉)’의 함의와 시대적 의의가 강조된 이후 송시열을 추숭하는 노론 세력과 선왕들의 존명배청 의식을 계승한 영조 등에 의해 ‘비풍하천’은 문학작품 속에 적극적으로 수용되었다. 영조대 이후에는 ‘비풍하천’ 자체도 문학적 술어로 사용되는 사례가 증가했지만, 이 술어의 축약형인 ‘풍천’이 새로운 용어로서 주목받게 되었다.
애초에 송시열을 비롯한 노론과 효종의 북벌의지를 담아내었던 ‘풍천’은 영조의 삶과 글쓰기의 궤적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문학 용어로 기능하게 되었다. 영조는 ‘풍천’을 통해 자신의 탕평 정책을 강화하는 논리를 마련하려는 모습도 보였으며 이는 정조에 의해서도 일정하게 계승되었다. 영조 이후에 ‘풍천’은 조정의 신하들로부터 초야의 학자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의 문인ㆍ학자들에 의해 사용되면서 그 함의 또한 외연을 크게 확대할 수 있었다. 멸망한 명나라를 추념하는 것을 넘어서서 ‘풍천’의 정신을 통해 조선이 주체적으로 명나라의 역할을 대신해야 한다는 생각의 실마리를 찾는 이들도 나왔으며, 명나라 유민의 후손들과 같이 잊혀져가는 자신의 뿌리를 ‘풍천’을 통해 되새기고자 하는 이들도 있었다.
‘풍천’은 궁극적으로 영조 한 사람을 특징짓는 용어로서 그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시대정신을 표상하는 언어였으며, 더 나아가 영조 이후의 조선후기 전체를 관류하는 문학적 술어가 되었다. 앞으로 현전하는 방대한 분량의 영조 어제가 조선후기의 사회ㆍ문화적 특성을 구명하는 것뿐만 아니라 문학사적 맥락을 이해하는 데에도 다양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목차

요약
1. 서론
2. ‘風泉’과 영조 어제
3. ‘風泉’의 典故化 양상
4.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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