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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동학학회 동학연구 동학연구 제14·15집
발행연도
2003.9
수록면
25 - 60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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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충청도 서북부일대에 해당하는 내포지역의 동학 농민전쟁 전개양상을 살펴보았다. 내포지역에서 전개된 농민전쟁은 다음과 같은 특징적인 양상을 보였다.
첫째, 내포지역의 동학은 1883년에 전래된 이래 박인호를 중심으로 큰 세력을 형성하며, 경전 간행, 광화문 복합상소 등 주요 고비마다 동학교단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변방에 위치한 지리적 한계로 동학교단의 중심부로 성장하지는 못하였다.
둘째 내포지역에서는 4월에 첫 봉기가 일어났고, 7월 이후에는 감영에서 '농민군을 각 군현의 執網으로 임명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만큼 농민군 활동이 활발했다. 내포지역의 9월 총봉기, 10월 대전투는 이같은 사전 활동 속에 형성된 세력을 바탕으로 성립될 수 있었다.
셋째 흔히 '北接'은 최시형의 지휘로 봉기했다고 말해진다. 그러나 내포 농민군은 다급한 상황이 닥치면 최고지휘부의 지시가 없어도 스스로 봉기하기로 결정하였고, 9월 총 봉기령은 그 이후에 내려진 것이다.
넷째 내포 농민군은 전봉준·손병희 등 주력 농민군의 北上과 때를 같이 하여 총봉기하였고, 주력 농민군이 공주일대에서 총력전을 펼치던 그 기간 동안 일본군·관군에 맞서 집중적인 전투 활동을 벌였다. 이들의 위력적 활동은 일본군·관군의 전투력이 공주지역에 집중되지 못하게 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다섯째 내포는 홍주목사 이승우를 주축으로 한 유회군 활동이 대단히 강한 지역이었다. 내포 농민군은 11월 중순 이후 일본군과 유회군에게 대대적인 탄압을 받으며 많은 희생자를 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동학조직을 재건하였다. 1908년 박인호가 천도교 4대 교주에 오른 것은 내포일대의 동학조직이 재건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목차

한글 논문개요
영문 논문개요
Ⅰ. 머리말
Ⅱ. 동학의 내포지역 전래와 확산
Ⅲ. 동학농민전쟁의 발발과 내포지역의 동향
Ⅳ. 9월 재봉기와 내포지역 농민전쟁의 전개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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