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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한국기독교와 역사 한국기독교와 역사 제27호
발행연도
2007.9
수록면
5 - 43 (3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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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타 셔우드 홀은 1890년 미북감리회 여성해외선교사회 선교사 의사로 조선에 파견되었다. 그녀는 보구여관에서 근무하면서 조선여성을 대상으로 의료활동을 했는데, 그 과정에서 의료 인력의 부족을 느끼고 몇 명의 소녀들로 구성된 의학훈련반을 시작했다. 이 소녀들 가운데 한 명이 김점동(박에스더)으로 의사가 되고자 결심하고 홀의 미국 귀국시 동행하여 볼티모어여자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900년 조선여성 최초의 서양의학을 전공한 의사(M.D.)가 되었다. 조선여의사의 탄생은 박에스더 개인의 의지의 소산이기도 하지만 그 뒤에는 박에스더의 뜻을 적극 지지ㆍ후원하고 길을 인도해준 로제타 홀과 박유산(박에스더의 남편)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로제타 홀은 선교지 조선에서 의사선교사로 활동하면서 느꼈던 의료인력 부족문제를 해결하고 조선여성의료인력을 양성하기 위해서는 장로회 병원 의료 인력과의 연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미북감리회 여성해외선교사회에서 새로 세우려고 계획하고 있는 릴리안해리스기념병원이 남대문 장로회 병원 근처에 세워지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선교회의 결정으로 결국 릴리안해리스기념병원은 동대문 볼드윈진료소 자리에 건설되었다.
이후 로제타 홀은 1913년 메타 하워드와 함께 평양 광혜여원에 여성의학반을 설치하고 의사가 되기를 희망하는 소녀들에게 기초교육과 실습기간을 가지도록 하는 한편, 미북감리회 여성해외선교사회에 여자의학교 설립을 타진했다. 당시 여성의학반에 교수진이 부족해 학생들에 대한 의학강의가 일본인 의사들의 자원봉사에 의해 진행되었고, 여성해외선교사회에서 여성의학반 운영을 위한 예산이 아직 배정이 되지 않아 여성의학반을 개인들의 후원금으로 운영하던 상태였기 때문에 재정과 인력의 지원이 시급한 상황이었다. 이에 로제타 홀은 여성의학반의 원활한운영을 위해 장로회측에 재정적 지원과 여의사 파견을 요청하며 협조를 구했으나 별 효과가 없었다.
조선여의사 양성이 여의치 않게 되자, 로제타 홀은 조선총독부의원의 일본인 원장을 찾아가 부속의학강습소를 남녀공학으로 해 줄 것을 건의하는 동시에 의학을 공부하고자 하는 조선여학생의 청강을 허락해줄 것을 요청했다. 로제타 홀의 남녀공학 건의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1914년부터 조선총독부의원 부속의학강습소(1916년 경성의학전문학교로 승격됨)에서 조선여학생들의 청강이 가능하게 되었다. 1918년 이 여학생들 가운데 3명이 공부를 마치고 의사 면허를 획득함으로써 국내에서 의학공부를 하고 의사가 된 최초의 여의사가 되었다. 1910년 박에스더 사후 1918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조선여의사가 배출되기 시작했다. 이후 1926년까지 경성의학전문학교 청강생으로 여러 명의 조선여의사가 배출되었으나 1925년부터는 청강생 입학이 금지되면서 국내 조선여의사 양성이 난관에 부딪히게 되었다.
로제타 홀은 선교회와 총독부를 대상으로 조선여의사 양성을 위해 교섭을 진행하는 한편, 조선여학생과 그 부모들을 대상으로 의학교 진학과 의사되기를 권하며 설득작업을 벌였고 재정적인 지원(장학금)까지도 약속하며 조선여의사 양성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조선여의사 양성을 주장하고 설득했던 로제타 홀의 논리는 첫째 의사가 모성과 여성에 부합되는 직업임을 강조하고, 둘째 조선민족과 조선여성을 위한 사명감에 호소하고, 셋째 산과가 세계사적으로도 고대로부터 여성 본연의 일이었고 의사는 신이 여성에게 주신 일이며 조선 최초의 서양의학전공 의사 역시 여성인 박에스더였다고 강조하면서 의학의 역사를 들어 여의사 양성을 옹호했다.
1925년 경성의학전문학교에 조선여학생의 청강이 금지됨으로써 국내 조선여의사 양성이 벽에 부딪치게 되었지만, 로제타 홀은 이미 1923년 동경여자의학전문학교에 재학하고 있던 길정희를 찾아가 조선여자의학교육기관을 설립하고자 하는 자신의 계획에 동참해 줄 것을 당부했던 때부터 조선여자의학교 설립을 계획하고 구체화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로제타 홀의 여성의학교육기관 설립 의지는 조선 여의사들과 조선 유지들, 미북감리회 선교회의 지지에 힘입어 1928년 조선여자의 학강습소 설립으로 실현되었다.

목차

1. 머리말
2. 미북감리회 여선교사의 조선의료선교
3. 로제타 홀의 조선여의사 양성 과정
4. 조선여자의학강습소의 설립과 운영
5.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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