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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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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여성사학회 여성과역사 여성과역사 제20호
발행연도
2014.1
수록면
139 - 177 (3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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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세의 한국 소녀 김점동은 그녀가 원했기 때문이 아니라 부모의 가난함, 아무리 가난하더라도 아들을 중시하여 양자를 들이는 당시 한국사회의 관습, 여동생의 탄생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이화학당에 입학하였다. 새로운 학문과 사상을 전파하는 교회당에 근무하면서도 양자를 들이는 대신 딸을 내보내는 한국의 전통적인 관습에 사로잡혀 있던 아버지에 의해 그녀는 서구사상과 문물에 접하였다. 그리고 이화학당에서의 신학문 공부 및 서양인 선교사들과의 생활, 진료소에서의 서양인 여의사 의료 보조 활동을 통하여 한국 소녀 김점동은 교육받은 여성, 서구사상과 문물에 눈뜨고 그것들을 활용하는 여성, 에스더로 성장하였다. 선교사들의 주선으로 이루어진 에스더의 결혼은 두 집안 간의 관계에서 부모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과 달리, 배우자가 그리스도교신자이기 때문에 성사되었다. 결혼 1년 여만에 선교사를 따라 내딛은 미국 땅에서 그녀는 의학 공부를 시작하였다. 선교사와 선교회의 도움도 있었지만, 그녀가 의학을 공부하고 의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녀 자신의 의지와 노력, 그리고 남편의 적극적인 후원과 지지 때문에 가능하였다. 박에스더는 전문직업인, 여의사가 되어 귀국하였다. 그리고 서양인 여의사와 함께 당당하게 한국 여성들을 진료하였다. 당시 한국 사회가 여전히 여성들의 사회진출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을 뿐 아니라 전문직일지라도 폄하하려 하였지만 그녀는 의사로서의 자부심을 가졌고, 그녀의 일에 충실하였다. 박에스더의 이화학당 입학은 그녀 아버지의 결정이었다. 그러나 이후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결혼을 하고, 미국으로 가고, 그곳에서 의학을 공부하여 전문직업인 의사가 되고, 귀국하여 한국 여성들을 위해 의료활동을 전개한 것 모두가 그녀의 선택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래서 그러한 그녀의 삶은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자 하는 한국 여성들에게 영향을 미쳐, 상당한 시간이 요구되기는 하였지만, 많은 한국 여의사들을 탄생시켰다. 그래서 ‘한국 최초의 미국 유학 여성’, ‘한국 최초의 서양의학 여의사’라는 그녀에 대한 평가와 의미 부여는 한국 근대사‧한국사에서 역사적인 의의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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