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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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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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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한국기독교와 역사 한국기독교와 역사 제30호
발행연도
2009.3
수록면
5 - 33 (2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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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해방 직후 미군정에 참여한 선교사 및 관련인사들의 입장과 활동을 다루었다. 전후에 선교사 혹은 자녀들은 미군정 측이 한국 통치를 위해 가장 주목한 집단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19세기 말부터 한국의 의료와 교육 등의 영역에서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고 한국에 대한 정보를 체계적으로 축적한 유일한 집단이었기 때문이다. 해방 후 이들은 우선 한국에 군정관리와 자문관으로 입국해서 미군정에서 활동했다. 선교사 관련 인사들은 태평양전쟁기에 미국정부의 대일전 수행에 참여한 경험이 있었고 한국에서 선교사업과 ‘민주주의’의 확립을 같은 일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미군정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그러나 현실적 어려움 때문에 남한에 선교사들이 공식적으로 입국하기 시작한 것은 남한주둔 미전술군의 감축과 물가안정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이후였다.
한국에 1946년 초부터 입국하기 시작한 선교사들은 대체로 1947년 말부터 1948년 초에 걸쳐서 선교부를 다시 구축했다. 선교사들 중 가장 중요한 교파는 북장로교 측이었는데 귀환한 이들 중 상당수는 대체로 식민지 시기 신사참배문제에 대해 당국에 협조적인 인물들이었다. 특히 H. H. 언더우드는 선교사들의 귀국을 돕고 선교부 재산을 다시 찾을 수 있게 해준 가장 중요한 인사였다. 새로운 환경 속에서 북장로교 측은 교회, 학교, 병원 등에 대한 재정지원을 통해 한국 개신교계에 대한 영향력을 재개할 수 있게 되었다.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미군정과 우호적인 관계에 있었고 대한민국 정부수립에 대해 우호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미군정에 참여했던 H. H. 언더우드와 J. E. 피셔이다. 아울러 이승만의 오랜 친구 H. B. 헐버트는 대한민국의 탄생을 가장 열렬히 환영했다. 선교사들 중 미군정과 남한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한 인사들도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해방 전 YMCA에서 활동한 A. C. 번스와 숭실전문학교 교장 아들인 G. M. 맥큔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해방 전후로 미 국무부에서 활동했고 미국 대학의 교수를 역임했다. 물론 이들은 남한의 개혁이 소련과 북한에 대비되는 더 건강한 반공체제를 수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한편 이승만을 수반으로 하는 신생 대한민국 정부는 선교사들의 활동에 우호적인 환경을 적극적으로 조성했다. 선교사들에 대한 훈장수여, 국장 수준의 장례 등은 그 단적인 예이다. 선교사들과 정부의 우호적 관계는 이승만을 수반으로 하는 신생 공화국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목차

1. 머리말
2. 해방 이후 선교사들의 귀환문제
3. 선교사들과 미군정의 관계
4. 선교사들의 정부수립에 대한 입장
5.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미군정 참여 미국선교사ㆍ관련 인사들의 활동과 대한민국 정부수립” 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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