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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시아문화학회 동북아시아문화학회 국제학술대회 발표자료집 2001 동북아시아 문화학회 제2차 국제학술대회
발행연도
2001.6
수록면
14 - 18 (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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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은 일본어를 중국의 낱말과 표현에서 차용해왔다. 「필여(匹如)」는 11세기 헤이안 시대에 이러한 한 예의였다. 당(唐)대의 중국어에서의 이 낱말의 원래 의미는 “예를들면” “~인듯한” “마치~인듯한”등이었다. 하지만 헤이안 시대인들은 잘못 번역하역된 “스루스미”를 이 낱말에 부여했다. 그 당시의 일본어로 “스루스미”는 “alone"의 뜻이었다.
중국어를 번역하던 헤이안 시대인들은 논어(論語)나 모시(毛詩)같은 고서(古書)에서 참조하였다. 「필여」는 다소 새로운 구어적 표현이었으므로 사람들은 그 이상의 참조할 기록을 찾을 수 없었다. 그들은 아무런 단서없이 그 표현을 해석해야 했다. 그것은 그 표현이 얼마나 잘못된 방법으로 번역되었는지를 말한다. 그리고 일본인들이 구어체 중국어(唐話)를 바르게 번역하지 못한 예였다.
또 다른 흥미로운 현상은 17-19세기 많은 구어체 중국어(唐話)낱말과 표현의 유입이었다. 17세기 어록해의(語錄解義)로 불리어진 구어체 중국어(唐話) 사전은 한반도에서 대대로 전해진 사전을 바탕으로 편집되었다.
특히 에도시대, 당화학(唐話學)이 확립되었으며, 사전들이 편집되었고, 구어로된 몇몇 문학 작품들이 일본어로 번역되었다. 에도시대 가장 대표적인 유학자 적생조대(荻生?徠)(1666-1728)는 심지어 인간의 감정들도 구어로 표현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국어와 일본어 쌍방의 구어적 표현을 대단히 강조했다. 속어해(俗語解)는 그 당시 고도(高度)의 당화학(唐話學)을 보여준다 18세기의 연구와 번역의 절정기 후, 19세기에 동택마금(童?馬琴)(1767-1848) 같은 몇몇 소설가들은 그들의 작품에 아주 많은 구어체 중국어(唐話)를 사용했다. 그들의 소설을 읽은 사람들은 소설속의 구어체 낱말과 표현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이러한 추세는 메이지 시대 중기까지 계속되었다.

목차

一. はじめに
二. 「匹如」(ひつじよ)の受容と解?の歷史
三. 江戶時代の唐話?書と中國俗語
四. 江戶文學と中國俗語
五. 近代と中國俗語
六. おわり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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