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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사학회 사학연구 史學硏究 第88號
발행연도
2007.12
수록면
411 - 472 (6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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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의 대일관계 연구는 『삼국사기』 일본측 사서의 차이점을 비교 검토하기보다는, 논자 상호간에 어느 한쪽의 자료만을 취함으로써 상반된 논리만을 되풀이하여 왔다. 본고는 이에 주목하여 양측 기록의 차이점과 그 의미를 살피고, 이를 바탕으로 신라와 일본간에 전개된 교역의 변천양상을 재구성하고자 하였다.
첫째, 8세기 신라와 일본을 왕래한 이른바 ‘신라사신’은 國書의 미지참, 사적으로 교역물품을 준비했다는 점, 그 자신이나 일본측 관리가 모두 조공사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 등으로 미루어 국가간 공식 사절로 인정하기 어려운 점이 있었다.
둘째, 일본에 가져간 통일신라의 교역물품은 730년을 획기로 하여 큰 변화가 있었다. 곧 이전 시기에는 일본왕실에 소용되는 것으로서 신라 궁중수공업장에서 생산된 물품이었지만, 730년 이후 8세기 동안은 주로 신라 6두품이나 일반귀족이 사용하는 물품으로서 일본 귀족층을 대상으로 신라 진골귀족의 수공업장이나 민간수공업장에서 생산된 물품이었다. 이러한 물품의 성격 차이는 신라와 일본간의 교역이 국가간 공무역에서 신라 진골귀족 주도의 사무역으로 옮겨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으로 풀이되었다.
셋째, 애장왕 4년(803) 신라와 일본간의 ‘交聘結好’는 貞觀年間 중 당나라 사신을 送使하던 그러한 정신을 이어 신라와 일본간에 태정관과 집사성이 상호 牒을 주고 받으며 협조관계를 맺은 것이었다. 그 내용은 ‘일본이 견당사를 보내면서 일본 太政官이 신라 執事省에 통고한다’, 그리고 ‘견당사 배가 표착하면 물자를 주어 돌려보내든지 아니면 당나라에 가도록 도와준다’, ‘만일 표착하지 않은 실종된 배의 경우 신라가 사신을 당나라에 파견하여 그 소식을 물어 일본에 알려준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양국간의 ‘交聘結好’의 배경에는 일본의 지속적인 당문물 수용에 대한 욕구와 신라 진골귀족들의 대일교역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정책적인 측면이 있었다.

목차

요약
머리말
Ⅰ. 신라ㆍ일본간 ‘使臣來往’에 대한 몇 가지 문제
Ⅱ. 7~8세기 신라의 대일교역품과 그 성격의 변화
Ⅲ. 애장왕대 신라ㆍ일본의 ‘交聘結好’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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