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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朴南守 (국사편찬위원회)
저널정보
신라사학회 신라사학보 신라사학보 제25호
발행연도
2012.8
수록면
123 - 174 (5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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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세기 전반 성덕왕대(702~737)의 정치사회적 성격에 대한 평가는 전제왕권의 극성기, 또는 하대로의 전환기로 엇갈리고 있다. 이러한 데는 성덕왕대 정치세력의 동향을, 전제왕권을 옹호하는 왕당파와 반전제주의세력의 대립갈등이라는 구조로 파악한 데 있다고 본다. 사실《속일본기》에서는 金順貞과 그의 孫 金邕 景德王에 대하여 친일본 정책의 주도자로서, 孝成王과 金思恭에 대해서는 대일강경책의 주도자로 평가하였다. 이로 인하여 "갈등론적 시각"의 논자들은 대체로 김순정과 김옹을 반전제주의 세력으로, 김사공에 대해서는 전제주의를 옹호하는 왕당파로 여겨 왔다. 이에 필자는 성덕왕대 대일 교섭을 주도했던 金順貞의 신라 내에서의 정치사회적 위치를 그의 가계와 "上宰"라는 직함을 중심으로 밝히고자 하였다. 또한 金思恭과 金順貞의 대당·대일정책의 성격을 성덕왕대 대외 정책 및 이를 주도했던 세력과 관련하여 살피고자 하였다.
그 결과 성덕왕대 이후 중대 왕실은, 무열왕계의 혈연을 바탕으로 하여 왕실을 관장하는 내성사신(전중령)으로 상재직에 보임하여 그 지위를 승계케 함으로써, 나물왕계 진골 출신의 도전에 대하여 왕통과 왕권을 수호하고자 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김순정의 대일 교섭 또한 성덕왕대의 변화하는 국제정세에 맞추어 우선 외고 대상국을 일본에서 당으로 바꾸면서도, 일본의 요청에 부응하여 국교를 맺는 등 일본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풀어왔다. 이후 국제적인 위상을 갖춘 신라는 당에 대해서는 군자국, 그리고 일본에 대해서는 왕성국이라 일컬으며 신라의 존엄을 과시하는 적극적인 대외정책을 폈던 것으로 이해된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金順貞의 家系와 上宰
Ⅲ. 성덕왕대 대외정책과 대일교섭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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