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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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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동악어문학회 동악어문학 한국어문학연구 제48집
발행연도
2007.2
수록면
201 - 237 (3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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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말 17세기 초 ‘진한고문파’의 성립은 명나라 前後七子의 ‘文必秦漢’論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고려 때부터 이어져 내려오던 先秦散文과 兩漢散文에 대한 우리 문인들의 인식이 진한고문파 성립의 보다 근본적인 이유다. 선진산문과 양한산문은 각각 散文批評과 古文運動의 측면에서 지속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었으며, 尹根壽에 의해 도입된 전후칠자의 문학론은 이러한 관심을 확대 재생산시킨 것이었다.
鄭弘溟과 朴?, 그리고 申翊聖을 중심으로 구성된 ‘五子’는 문학적 연대의식이나 정치적 입장 등에서 하나의 ‘流派’로 파악할 수 있으며, 명나라의 문학이론을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그 유파의 성격 역시 비교적 명확하다.
정홍명에게 있어 진한고문은 영원한 생명력을 획득한 文章의 전범이었으며, 전범으로서의 진한고문은 ‘立言垂後’하려는 그의 창작정신에 불후의 생명력을 제공해 주는 원천이었다. 신익성은 전후칠자의 창작에 나타난 표절과 답습의 폐해를 분명히 인식하고, 이를 극복하여 진정한 진한고문의 경계에 도달하고자 하였다. 박미는 當代 문풍이 時勢의 변화에 따라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사람들의 습속처럼 굳건한 기세가 없다고 판단하고, 그 대안으로 ‘鼓振’한 기운을 가진 진한 고문을 추구하였다. 이 세 사람은 산문비평과 고문운동의 관점에서 前代 문인들이 보여준 전통을 잘 계승한 진한고문파의 핵심적 맴버였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진한고문파의 ‘流派’的 가능성
Ⅲ. 진한고문파 성립의 문학사적 기반
Ⅳ. 秦漢古文에 대한 인식의 실상
Ⅴ. 맺음말
Abstract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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