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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사학회 문화사학 文化史學 第21號
발행연도
2004.6
수록면
947 - 993 (4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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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7년 10월 14일 프로비던스호가 부산 용당포에 내항, 10일간 체류하면서 부산 항박도를 제작했고, 부산 주민과의 대화를 통하여 한국어 38단어를 채록했으며, 26종의 식물표본을 채집하는 등 한영 문화 교류의 성과를 거두었다. 10월 20일 출항시 영국은 망원경과 영국제 총포를 선물로 주고 이한하면서 조선은 ‘대외 불교섭 폐쇄국’ 이라 규정했다. 프로비던스호의 부산 내항은 당시 해금정책을 강화하고 있는 조선사회에 엄청난 문화적 충격을 주었다는 점에서 영국의 한반도 항해탐사의 의미는 크다 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1801년 신유사옥이 발생하자, 황사영은 프로비던스호의 군함의 규모에 문화적 충격을 받아 서양 병선을 청래하여 박해받고 있는 천주교도를 구원하고 신앙의 자유를 구현하고자 이른바 황사영백서(黃嗣永帛書) 사건 발단의 원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1816년 9월 1일 알세스트ㆍ리라호 영국군함 2척이 서해 백령도군도에 내항, 서해안 일대를 정밀하게 탐사하면서 문화적 접촉을 통하여 한국어 28개 단어를 채록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마량진 첨사와 비인현감과의 교섭장면을 그린 채색화 한폭을 당시 세인트 헬레나 섬에 유배중인 나폴레옹에게 보여주었더니 감탄했다는 것이다. 10일간 체한하면서 책 3권을 주면서 조선인은 ‘비사교적 국민(unsocial people)’ 이라 결론을 내리고 있다.
1832년 영국은 조선과 통상교역을 교섭하기 위하여 로드 애머스트호를 공식 파견했다. 1832년 7월 17일 황해도 장연현 장산꽂 앞바다에 영국 로드 애머스트호가 입항, 8월 17일까지 한달 동안 서해안 일대를 순항하면서 한영간 문화적 접촉을 하게 되었다. 애머스트호에는 개신교 목사이며 중국학 대가인 귀츨라프가 동승했는데, 한 손에는 성경 한 손에는 통상교역품을 들고 내한한 것이다.
귀츨라프는 선교와 교역이라는 두 가지 임무를 실현하기 위하여 홍주목사에게 조선국왕에게 통상교역을 강요하는 국서와 성경과 복음서를 포함한 상헌예물을 전하고, 국왕에 전달해 줄 것을 요청하면서 국왕의 비답을 기다리겠다고 언명했다. 국서에는 조선과 공무역을 체결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公貿易設約). 그러나 조선정부는 번신은 외교권이 없다(藩臣無外交), 청의 칙허(文憑)없이는 함부로 교섭할 수 없다, 교린을 핑계로 교역을 강요함은 사리에 어긋난다는 등 통상불가 3원칙을 천명하면서 영국의 통상교섭 요구를 거부했다. 이에 조선정부는 국서와 예물을 모두 불태워 버린 것이다(焚書). 귀츨라프는 조선은 청의 속국이 아니라 의례적인 조공국일뿐이며, 조선은 사실상 독립국이기에 청의 칙허없이 교역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통상교역을 강요했다. 그러나 조선은 통상교역을 거부하고 해금정책을 강화하게 되었다.
귀츨라프는 감자 씨앗을 전하면서 재배방법을 가르쳐 주었고, 의약품과 복음서를 나누어 주는 등 주민과의 접촉을 통하여 조선어 단어채록을 시도했지만 조선인은 신유사옥 이래 금지되어 있는 서양 종교에 대한 거부반응으로 언어교류는 이루어지지 아니했다. 앞서 프로비던스호와 알세스트ㆍ리라호는 한영간 언어문자 교류가 순조로이 이루어졌지만, 이번에는 지방관은 한영 양국어가 소통하게 되면 자연 한영간 교섭이 이루어질 것을 염려하여 일체 이를 금지했기 때문에 문자교류는 성사되지 못했다. 조선 농민의 절대빈곤, 불결성, 퇴화성 생활상 등을 지적하면서 서양 기독교 문명을 받아들인다면 에덴동산은 도래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조선인에게 절대 필요한 것은 비누와 성서(soap and bible)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목차

요약
Ⅰ. 서론
Ⅱ. 영국 대한 통상시도
Ⅲ. 영국 탐험선 프로비던스호의 부산 용당포 내박(1797)과 황사영의 대박청래(大舶請來) 운동(1801)
Ⅳ. 영국 군함 알세스트호와 리라호 조선 서해안 탐사와 문화교류(1816)
Ⅴ. 영국 로드 애머스트호의 통상교역 강요와 조선의 해금(海禁)정책(1832)
Ⅵ. 결론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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