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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민덕기 (청주대학교)
저널정보
한일관계사학회 한일관계사연구 한일관계사연구 제42집
발행연도
2012.8
수록면
189 - 228 (40page)

이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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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禁정책은 海防이나 華夷질서의 확립을 추구한 정치·국방 중시 정책으로, 새 질서를 세우려는 왕조의 건국기에는 일정한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元末明初의 중국 연해안은 華夷가 혼재해 있는 가운데 明朝 지배가 철저하지 않은 혼란상태에 있었으나, 해금은 연해안에 새 질서를 구축하는데 일정한 도움이 되었고, 민간무역이 정지된 이후엔 조공무역을 보완한 책봉체제의 구축이나 국내경제 시스템의 보강에 공헌했다. 淸代초기에도 해금은 정성공 정권의 약체화에 일정한 공헌을 하고 있다. 그러나 해금은 연해안 지방의 경제발전을 가로막고 무역을 통제하여 국가경제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정책이었다. 그 때문에 새 질서가 안정기에 들어가자 해금은 반발을 초래하여 사회적 불안정화의 요인이 되었다. 이 때문에 明·淸代의 해금은 점차 이완되고 변화하여 간다.
明朝의 해금정책은 영락제 이후 이완되고 조공정책 또한 소극화 되어간다. 그런 점에서 對日 책봉·조공관계도 그와 똑같이 변화해 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즉 영락제와 아시카가 요시미츠와의 돈독한 책봉관계는 선덕제 이후 쇠퇴하여 책봉사 파견을 통한 실질적인 책봉관계는 생략된다. 조공관계 또한 중앙정권인 무로마치 막부가 아닌 호족 세력 오우치씨 등에게 장악되어 그 정치적 측면이 퇴색되어간다.
明·淸代 해금정책의 이완은 조선 서해연안에 중국인이 출몰하여 소란을 일으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들 ‘荒唐船’을 타고 온 중국인들은 麗末朝初의 왜구처럼 수백 척의 선단으로 수 백명이 떼를 지어 출몰하여 고기잡이를 벌이고 약탈을 자행하고, 나포하려는 조선 관리를 구타하고 칼로 찌르고 도망가곤 하였다. 그러나 조선은 나포와 북경 압송이라는 적극책보다 총포로 위협하여 쫓아버리는 소극책으로 일관하게 된다. 나포 당하지 않으려고 저항하는 이들 ‘上國人’을 제압하다 다치게 하거나, 압송 과정에서 도망가거나 病死하는 사고라도 발생하면 淸朝의 추궁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강경책으로 나포하고 압송한다 해도 그들을 압송하는데 제공해야 할 人力과 牛馬 및 식량을 도저히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들은 수백 척의 선단으로 수백 명씩 떼를 지어 출몰했기 때문이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明代 해금정책의 이완과 변화
3. 明代 일본과의 책봉 · 조공관계의 파탄
4. 淸代 해금정책과 변화
5. 明代 조선 서해상에서의 분쟁
6. 淸代 조선 서해상에서의 분쟁
7.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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