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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문동양사상연구원 오늘의 동양사상 오늘의동양사상 제15호
발행연도
2006.10
수록면
57 - 70 (1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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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화주의’의 연원은 기자에게로 소급된다. 기자가 주나라 무왕에게 홍범을 전해 주고 조선으로 오자 조선은 중화문화를 계승한 문화국가가 되었다는 논리이다. 조선인들은 기자 조선의 실재를 믿었고 기자의 행적을 정밀하게 검토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또한 기자의 도읍지로 파악되는 평양에 있는 기자 관련 유적을 발굴하고 보존했다. 이에 따라 기자의 무덤과 사당은 고려시대부터 있었지만, 조선시대에는 기자를 기념하는 서원이 세워지고 우물이 발굴되었다.
조선이 중화문화를 계승한 문화국가라는 인식은 자기 문화에 대한 자신감으로 나타났다. 조선은 기자의 가르침이 전해진 나라이며, 성리학을 계승하고 유교적 의례를 거행한다는 것은 문화국가의 상징이 되었다. 중화주의에 나타난 문화적 자신감은 대한제국을 건설하고 황제국의 위상에 맞는 전례를 정비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대한’이란 국호는 삼한을 하나로 통일했다는 ‘일통삼한一統三韓’의 의미를 부각시킨 표현이었다.
1894년에 발생한 청일전쟁에서 청이 일본에 패하는 것을 목격한 조선인들은 세계관을 변화시켰다. 이제 조선인들은 중국 중심의 세계에서 벗어나 서양 중심의 세계로 편입되었다. 그러나 유교문화를 중시하는 중화주의는 여전히 한국인의 의식에 남아 있으며, 이러한 한국의 전통문화를 어떻게 평가할지는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이다.

목차

1. 기자와 한국사
2. 평양에 있는 기자 유적
3. 중화주의와 문화적 자신감
4. 대한제국의 중화주의
5. 중화문화는 야만의 문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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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GLISH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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