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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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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위논문
저자정보

장예나 (숙명여자대학교,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

지도교수
문지영
발행연도
2015
저작권
숙명여자대학교 논문은 저작권에 의해 보호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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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연구 히스토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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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제국의 박물관에 수집 및 보관되었던 수많은 태즈메이니아 원주민의 유해는 오늘날에도 영국의 많은 유명 박물관, 갤러리, 각종 과학과 의학 연구기관에 보관되어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탈식민화(decolonization)가 진행되면서 피식민국가들은 과거 식민국가들에게 과거사의 청산을 요구했고 과거사의 인정과 보상의 하나로 유물의 반환을 요청하기 시작했다. 탈식민화와 민권운동의 진행으로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면서 조상의 유해 반환을 요청했다. 그러나 원주민의 유해 반환의 요청에 대한 당사국들의 대처는 무관심과 묵묵부답으로 일관했고 유해 반환에 대한 의식도 부족한 상태이다.
이 논문에서는 식민 제국시기 영국의 오스트레일리아 태즈메이니아 원주민의 유해 수집에서 오늘날 유해 반환까지의 과정을 살펴본다. 계몽주의 시대 이후 칼 폰 린네(Carl von Linne)의 분류 체계가 발달하면서 많은 학자들이 자연사 연구를 위해 동식물 및 인간의 종과 그 기원을 추적했다. 1859년에 『자연 선택의 방법에 의한 종의 기원, 또는 생존 경쟁에 있어서 유리한 종족의 보존에 대해(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 or the Preservation of Favoured Races in the Struggle for Life), 이하 종의 기원』을 발표한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은 종의 기원을 연구하면서 종의 진화를 발견했다. 종의 진화는 종의 변이의 작동, 즉 외부 환경에의 적응 과정을 통한 자연 선택과 자연 선택의 과정 속에서 종의 멸종 이론을 발견했다. 『종의 기원』 이후 1871년에 출간된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The Descent of Man, and Selection in Relation to Sex), 이하 인간의 유래』에서 다윈은 급격하게 인구수가 줄고 있었던 태즈메이니아 원주민을 자신의 인간 종의 멸종 이론을 뒷받침해주는 중요한 예로 제시했다. 이로써 태즈메이니아 원주민은 다윈의 과학적 이론과 인간의 기원을 뒷받침해주는 ‘잃어버린 고리’, ‘살아있는 화석’, ‘인간과 유인원의 중간 단계’이자 진화론의 가장 ‘낮은’ 단계에 위치한 열등한 타자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런 이유로 19세기에 태즈메이니아 원주민의 유해는 호기심의 대상이자 과학적 연구 대상으로 박물관과 각종 연구기관에 수집되었다.
유럽인들은 자신들과는 다른 태즈메이니아 원주민의 얼굴 생김새, 피부색, 신체, 문화의 차이에 주목했고 태즈메이니아 원주민의 멸종 이론을 강력히 주장해왔다. 과학, 인류학, 민족지학 등의 근대 서구 지식체계가 이러한 멸종 이론을 뒷받침해주었다. 더불어 영국의 식민주의자들은 태즈메이니아로 식민지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원주민을 절멸시키는 데 앞장섰다. 식민 정책의 진행 속에서 실행된 태즈메이니아 원주민의 죽음은 제노사이드, 즉 식민지?프런티어 제노사이드의 구조와 같았다. 식민지 정책과 제노사이드의 진행 과정 속에서 절멸되어가던 마지막 순수 혈통 태즈메이니아 원주민 래니와 트루가니니의 유해의 가치는 다윈주의 진화론의 확대와 더불어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들 마지막 태즈메이니아 원주민 유해 스캔들인 ‘래니 스캔들(Lanney Scandal)’로 태즈메이니아 식민지에서는 1869년 태즈메이니아 해부법(Anatomy Act)이 제정되었다. 하지만 1869년 법 역시 태즈메이니아 원주민을 위한 것이 아니었고 여전히 그들의 유해를 수집하는데 이용되었을 뿐이다. 언제나 타자이자 절멸의 대상으로 소장할 가치가 높았던 그들의 신체는 과학적 실험의 대상이었고, 사후에도 뇌의 크기, 인류학, 골상학 등의 신체를 통한 과학의 발전 속에서 열등한 타자로 간주되었다.
무덤에서 영면해야 할 많은 태즈메이니아 원주민의 유해는 영국의 식민 제국시기에 수집되었고 포스트 콜로니얼 시대에도 여전히 박물관에 보관 및 전시되어있다. 태즈메이니아 원주민들은 그들의 조상들의 유해가 고향으로 돌아와 묻히기를 바라고 있으며 유해 반환에 앞장서고 있다. 1990년대에 리버풀 왕립아동병원[Royal Liverpool Children’s Hospital(Alder Hey)]과 브리스톨 왕립병원(Bristol Royal Infirmary)에서 어린이들이 사후 부검되고 그들의 장기와 조직이 보관되어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알더 헤이 오건 스캔들(Alder Hey Organ Scandal)’은 장기의 수집과 보관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영국에서 제정된 1832년 해부법에서 ‘동의’의 개념이 규정된 이래로 이 사건은 부모의 동의가 없었다는 점에서 큰 문제가 되었다. 이후 태즈메이니아 원주민의 유해 반환 문제가 ‘알더 헤이 오건 스캔들’에 ‘편승(piggybacking)’되어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되었다. 따라서 신체, 신체일부분, 장기, 조직의 수집과 보관의 문제와 많은 원주민의 유해 반환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영국에서는 2004년에 인체조직법(Human Tissue Act)이 제정되었다. 인체조직법은 박물관의 원주민 유해의 반환에 대한 내용을 추가했다. 그리고 마침내 2007년에 인체조직법이 적용되어 영국 자연사박물관(Natural History Museum)에 소장되어 있던 17명의 태즈메이니아 원주민의 유해가 반환되었다.

목차

Ⅰ. 머리말 = 1
Ⅱ. 원주민 유해 수집과 원주민의 유물화 = 9
1. 다윈주의 진화론과 태즈메이니아 원주민의 위치 = 9
2. 유물로서의 오스트레일리아 태즈메이니아 원주민 = 13
Ⅲ. 태즈메이니아 원주민 절멸 정책과 유해 수집 = 24
1. 태즈메이니아 원주민에 대한 절멸 정책 = 24
2. 마지막 태즈메이니아 원주민 래니와 트루가니니 = 31
Ⅳ. 2004년 인체조직법과 유해 반환 = 41
1. 1832년 해부법에서 2004년 인체조직법까지 = 41
2. 태즈메이니아 원주민의 유해 반환 = 47
V. 맺음말 =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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