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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안성현 (중부고고학연구소)
저널정보
부산광역시 시사편찬위원회 항도부산 항도부산 제48호
발행연도
2024.7
수록면
1 - 54 (5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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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배산성의 시․발굴조사를 통해 밝혀진 내용을 중심으로 산성의 축조 시기와 성격 및 특징을 밝히기 위해 작성된 것이다. 초축 시기는 성벽의 축성법과 유물의 출토맥락을 고려할 때 6세기 중반 신라가 축조하였음을 밝혔다. 성벽은 수차례 수축이 이루어졌고, 통일신라시대에는 한 차례 대대적으로 개축되었다. 또한, 성 내부의 집수지와 건물지 역시 산성과 같은 시기인 것과 후대에 축조된 것으로 나누어진다. 배산성은 부산에서 경주지역으로 이어지는 육상 교통로와 남해를 이용한 해로의 결절점에 위치하며, 주변에는 이 지역 고대의 중요한 유적이 분포하므로 거점성의 기능을 수행하였음이 분명하다. 통일신라시대 동래고읍성이 축조되면서 배후산성으로 성격이 바뀌게 되지만, 그 중요성은 유지하였다. 한편, 배산성의 초축성벽는 6세기 중반 신라 산성의 특징을 공유하면서 새로운 축성술이 확인된다. 개축성벽은 통일신라시대 전형적인 축성법이지만 기단보축이 설치되었다는 점에서 이 시기 다른 석축산성과 차이가 분명하다. 이글에서는 자세히 다루지 않았으나 북동쪽 성우는 비정상적으로 돌출되어 있는데, 돌출부 내부에 대한 시굴조사에서 건물지가 확인되었으므로 초축 당시부터 돌출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확인된 익성이 되는 셈이다. 그러므로 6세기 중반 신라 석축산성의 다양성과 통일신라시대 성벽의 지역성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또한, 8세기 중․후반 동래고읍성으로 치소가 이동되는 양상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성곽이다. 특히 배산성에서 출토된 기와는 북동쪽으로 6㎞ 정도 떨어진 회동동유적에서 공급되었을 가능성이 크므로 산성 내 기와의 공급체계가 명확하게 밝혀진 최초의 사례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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