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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유지아 (원광대학교)
저널정보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탐라문화 탐라문화 제76호
발행연도
2024.7
수록면
61 - 97 (3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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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에서는 제주 4⋅3과 동북아시아 냉전의 관계를 분석했다. 1948년에 동북아의 정세는 혼란했다. 남한에서는 단독선거 반대 운동이 표면화되었으며, 이후 ‘제주 4⋅3’, ‘5⋅10선거 반대투쟁’ 등으로 이어졌다. 이에 남한 미군정은 공산세력에 대한 경계를 강화하면서 더욱 강력한 레드퍼지를 감행했다. 이 과정에서 제주도에서는 군대가 민간인을 학살한 제주 4⋅3사건이 발생했다. 제주 4⋅3 은 미군정이 민중의 불만을 공산주의자의 선동으로 규정하여 무차별 탄압한 사건이다. 이러한 점에서 제주 4⋅3은 ‘미 군정에 대한 항거’라 할 수 있다. 이처럼 한반도에서 미소 냉전이 교착하는 동안 중국에서도 냉전은 본격화되어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다. 그 결과 미국은 일본을 공산주의 위협에 대한 방파제로 삼고, 공산주의 세력에 대처하기 위해 대일 점령정책의전환을 단행했다. 이러한 과정을 ‘역코스’라 한다. 먼저 미국은 한반도의 혼란한정치정세와 상황이 일본으로 전이되는 것을 막고자 했다. 때문에 GHQ는 점령초기에 비군사화 민주화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발령한 포츠담 명령을 사회주의운동을 단속하기 위한 법령으로 전환하였다. 다음으로 미국은 전범재판을 조기종결하고 대일강화조약을 맺고자 했다. 이런 상황에서 조기에 종결한 도쿄재판은아시아⋅태평양전쟁의 궁극적인 책임을 제대로 묻지 못했다. 그 결과 동북아시아에서는 현재까지도 역사문제를 둘러싼 냉전이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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