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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나영남 (한국외국어대학교)
저널정보
중국사학회 중국사연구 중국사연구 제149호
발행연도
2024.7
수록면
89 - 121 (3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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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대 斡魯朶는 耶律阿保機의 腹心部에서 유래한 것으로 거란인이 세운 새로운 체제이다. 최초에 황제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조직이었으나 점차 守陵, 出征, 생산, 捺鉢扈從 등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여기에 예속된 蕃漢轉戶는 주로 포로로 잡힌 한인, 발해인이고, 正戶는 선발되거나 자발적으로 궁적에 들어온 거란인이었다. 그리고 宮分人은 귀족 중에 황제를 시위하는 친위대와 죄를 지어 宮籍에 들어온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황제는 항상 上京에 거주하지 않고 황족 및 신료들과 함께 四時捺鉢 지역으로 巡幸했고 요의 정치적 중심도 황제의 소재에 따라 이전되었다. 따라서 궁분인들도 황제를 호종해야만 했다. 알로타는 황제가 이주하는 行宮이라고 할 수 있지만 넓은 의미로 이 행궁을 관리하는 기관과 제도를 총칭한 것이다. 이런 거대한 알로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중앙조직과 별도로 관리기구가 필요했다. 이들을 관리하는 기구로는 諸行宮都部署院을 정점으로 그 아래에 契丹行宮都部署司와 漢兒行宮都府署院이 부족과 주현을 나누어 관리했고, 거기에 각각 12宮 職名이 있었다. 그리고 알로타의 기층민을 조직하는 방식은 농경민과 포로는 주현과 제할사에 예속했고, 유목민은 석렬, 말리, 득리, 갑살 등에 속했다. 그리고 범죄자와 그 가속들은 와리에 편입했다. 이처럼 황제의 통치행위와도 밀접하게 연계된 알로타는 거란의 정치·사회 영역에서 조성된 유목문화의 독특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이 시스템은 황제의 사적 소유였으나 전제적 국가체제에서 황제의 권위가 곧 국가에 상응했던 까닭에 알로타 기관이 마치 국가기관과 거의 동일시되어 요가 멸망할 때까지 황제의 신변 보호와 황실의 경제적 기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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