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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손성욱 (창원대학교)
저널정보
동북아역사재단 동북아역사논총 동북아역사논총 제86호
발행연도
2024.12
수록면
147 - 186 (4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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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1894년 청일전쟁 발발 직전, 조선이 자희태후의 육순 성수절을 경하하기 위해 파견한 마지막 진하사를 통해 조청 간 전통적 책봉-조공 관계의 와해 과정을 고찰한다. 이 진하사는 조선의 최후 대청사행이자 최초의 황태후 성수절 경하 사신이라는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 건륭제 칠순 성절에 전례 없이 파견된 진하사가 양국 간 우호를 상징했던 것과 달리, 1894년 진하사는 청의 강화된 간섭과 악화된 조청 관계를 개선하려는 외교적 시도로 이루어졌다. 청일전쟁 발발의 위기감이 고조되는 상황에서도 진하사 파견이 강행된 것은 조선이 청과의 전통적 관계를 유지하며 외교적 지원을 확보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진하사는 자희태후 존호 가상 의식에 참석하며 조공 사신으로서 전례 없는 의례를 수행했으나, 청군의 패전과 일본군의 평양 점령이라는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중화 질서의 몰락을 목격했다. ‘시모노세키 조약’ 체결 이후, 진하사는 공식 사신이 아닌 ‘표류민’ 신분으로 청 군함을 통해 귀국해야 했다. 이는 전통 외교 질서가 새로운 국제 관계의 압력 속에서 종식되는 과정이자, 조선을 자주독립국으로 규정한 ‘시모노세키 조약’ 제1조의 실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목차

I . 머리말
II . 성수절 진하사의 기원
III . 선전포고 전야의 사행
IV . 공로의 변경: 의주에서 천진까지
V . 존호 가상과 육순 대경 의식
VI . 진하사의 삼절연공사 겸행
VII . 귀국: 사신에서 ‘표류민’으로
VIII .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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