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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장남원 (이화여자대학교)
저널정보
이화여자대학교 한국문화연구원 한국문화연구 한국문화연구 제46권
발행연도
2024.6
수록면
127 - 156 (30page)
DOI
10.17792/kcs.2024.46..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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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의궤와 사료 검토를 통해 ’唐沙器‘의 용례와 의미를 추론해본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사기계와 반사기계, 당사기계 등 서로 다른 주체들을 통해 왕실에 도자기를 조달하는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조선후기 백자에 대한 연구가 분원의 운영과 변화과정에 주목했다면, 본 연구는 의궤 기록 등을 통해 분원 자기의 왕실 납입이 일찍부터 공계의 운영구조안에서 이루어졌고, 그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당사기계, 사기계, 반사기계 등이 연결되어 있었을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 용례를 통해 ‘당사기’ 혹은 唐器의 의미를 조금 더 구체화 해 보았으며, 기록과 출토품을 통해 ‘당사기’가 중국도자기 뿐 아니라 조선에서 제작된 중국풍 백자를 의미했던 것을 알 수 있었다. 기록자료를 통해 사기계의 명칭과 역할은 18세기 중반경부터 확인되었는데, 이는 영조대 貢弊가 출간되어 사기계의 역할을 알 수 있었던 정황과도 맞물린다. 결국 17세기 대동법 실시와 18세기 말 장인등록제 폐지에 따른 수공업의 민영화 과정에서 왕실은 일정한 현물을 확보해야 했고, 분원자기도 생각보다 일찍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에 18세기 중반에는 이미 貢契로서 여러 사기계가 활동하였음을 알 수 있었고, 즈음하여 당사기계도 출현했을 것으로 보았다. 일반적으로 도자사 연구에서는 조선후기 분원의 변화 과정에서 왕실도 진상자기 외에 구매를 통해 수요를 감당하게 되면서 재정악화와 분원자기 생산의 통제에 어려움을 겪게 되고 결국 19세기 말에는 민영화로 이행하는 것으로 이해해왔다. 그러나 살펴본 바대로 이미 왕실에서도 당사기계를 통해 甲器나 畵器같은 기물들을 조달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18세기 중반 이후의 각종 의궤 기록과 함께, 17세기말~18세기초에 운영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경기도 광주군의 관요지에서 당사기를 지칭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명문이 적힌 요도구가 발견되어 분원 자기 조달 방식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요구된다. 각종 사기계의 등장과 唐沙器 같은 청화백자 내지는 고급자기 등을 각별하게 인식하면서 제작과 유통에 변화가 일기 시작한 것이 이미 18세기 전반 이후부터로 소급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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