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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일환 (서울장신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한국기독교와 역사 한국기독교와 역사 제61호
발행연도
2024.9
수록면
125 - 155 (3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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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당골교회-홍문동교회-동현교회-승동교회로 이어지는 승동교회의 초기 역사에서 동현교회 시기는 분규와 징계 사건으로 인하여 구리개 제중원으로 옮겨와서 3년 5개월 동안 지낸 시기였다. 동현교회를 담임한 목회자는 밀러, 레이놀즈, 클라크 등이다. 그 중에 미국 남장로회 소속의 레이놀즈가 1903년 초부터 1905년 4월까지 교회를 담임하고, 미국 북장로회 소속의 클라크가 동역한 일은 연합사역의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동현교회를 재정비하기 위해서 서울선교지부는 동현교회 · 새문안교회 · 연동교회가 함께하는 행사를 많이 진행했다. 1902년 3월에 시작한 주일 오후 연합예배, 3개월에 한 번씩 열린 연합 성찬예배와 세례식, 1902년 3월에 열린 서울지역 최초의 연합 여성 사경회, 정기적인 주중 예배 및 매일 기도회등은 동현교회의 분위기를 쇄신하고, 서울지역의 장로교회가 성장하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시기에 전도부인으로 활동한 다동(茶洞)의 김 부인은 승동교회의 초기 역사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지도자다.
1905년 8월 1일에 승동으로 이전한 동현교회는 지명을 따라 승동(承洞)교회로 부르게 되었는데, 1908년 말 이후에는 승동(勝洞)교회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승동교회는 권서를 임명하여 양반들이 많이 사는 북촌지역 전도를 시도했는데, 그 결과 1908년 8월에 안동교회를 설립했다. 그리고 같은 해에 백정 출신인 박성춘 대신에 이여한을 초대 장로로 선출했다. 승동교회는 이런 과정을 통하여 곤당골교회부터 이어져 온 백정교회의 이미지를 벗어나고자 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1902-05년 동현교회 시기
Ⅲ. 1905년 승동 이전(移轉) 후의 변화
Ⅳ. 맺음말
참고문헌
한글초록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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