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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송정란 (부산대학교)
저널정보
부산경남사학회 역사와경계 역사와경계 제129집
발행연도
2024.8
수록면
327 - 357 (31page)
DOI
10.52271/PKHS.2024.08.129.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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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조선후기 청포의 도입과 변화, 영조대 정치에서 청색의 숭상 정책이 나타나는 과정을 살폈다.
청포의 사료적 표현은 ‘靑布’, ‘靑藍布’, ‘靑藍三升布’, ‘大靑布’, ‘小靑布’ 등 다양하게 등장한다. 색에 관한 표현으로 청포, 남포, 청람포가 있으며, 양모가 포함된 재질을 드러내는 표현으로 三升이 청포를 수식하기도 했다. 그리고 청포의 길이와 무게 등의 등급에 따라 大靑布, 小靑布라고 부르는 것으로 보인다. 청포 무역은 임진왜란 시기 명군의 군수품을 조선에서 충당하기 위해 시작되었으며, 명청교체기에는 조선과 명, 후금, 일본의 무역에서 청포가 중요한 물품으로 등장하고 있다. 병자호란 이후 청포는 주로 내수용으로 수입되었다.
청포는 임진왜란 시기 조선에 들어와 의복의 변화를 불러왔다. 청포로 철릭이 제작되었고, 철릭은 문관의 융복이자 무관의 평상복이 되었다. 임진왜란 이후 철릭의 색이 청색으로 정해졌다. 이와 더불어 조선 사회에서 예학에 대한 이해가 심화되어 가면서 백의가 상 중에 입는 의복이라는 인식이 생겨났다. 17세기 현종과 숙종은 백의를 금지하고 청색을 입도록 했다.
18세기 영조는 재위 초반 청색 숭상 정책을 펼쳐나갔다. 그러나 17세기 후반 이후 기자에 대한 인식이 강화되면서 백의는 조선의 문명화를 보여주는 상징으로 여겨졌고, 이 정책은 많은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그럼에도 영조의 청색 숭상 정책은 계속되었고, 이는 정조대까지 이어졌다. 청색 숭상 정책 결과 18세기에는 士庶人까지 靑衣를 입기 시작했다. 왕은 주체적으로 예의 해석자가 되었고, 청색을 통한 예적 질서를 士庶人까지 확대하여 조선 사회의 질서를 확립하고자 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청포의 도입
Ⅲ. 선조~숙종대 청포의 소비와 청색의 숭상
Ⅳ. 영조대 청색의 숭상과 의미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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