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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장유정 (단국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구비문학회 구비문학연구 구비문학연구 제72호
발행연도
2024.3
수록면
287 - 312 (26page)
DOI
https://dx.doi.org/10.22274/KORALIT.2024.7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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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아직 전모가 드러나지 않은 소녀악극단 ‘낭랑좌’를 본격적으로 소개하고, 그 구성원 중 한 명이었던 나선교의 행적을 드러내기 위해 작성되었다. 여성으로만 이루어진 단체 낭랑좌는 1936년에 결성하여 1938년까지 약 3년 동안 운영되었던 단체로, 악극, 레뷔(revue), 버라이어티 쇼를 선보이며 순업하였다. 처음 일본의 다카라즈카소녀가극단을 벤치마킹한 낭랑좌는 공연 내용에 우리나라만의 고유한 정서를 넣으려 노력하기도 했다. 이 글에서는 낭랑좌의 흔적을 찾아 그 결성과 해산까지의 내용을 정리하였다. 낭랑좌의 핵심적인 구성원 나선교는 유행가 가수와 악극단의 일원으로 활약했다. 그녀는 천도교인이자 독립운동가인 나용환의 딸로 당대에도 화제를 불러왔으나, 아직 그녀의 생몰연대조차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다. 이 글에서는 당대의 기록을 토대로 그녀의 생애를 조금이나마 정리하여 밝히고자 하였다. 특히 그녀의 당대 면담 내용을 토대로 그의 행적을 드러낸 것은 이 글의 성과다. 한편 이 글에서는 소녀로 구성된 단체를 언급할 때 일반적으로 지적하는 성 상품화 대신에 나선교의 말과 행동을 직접 인용하며 ‘인형-되기’가 아닌 ‘인간-되기’의 면모를 드러내고자 하였다. 노래의 제목을 바꾸고 노랫말을 수정하는 등 유행가 녹음 당시에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던 나선교는 낭랑좌의 구성원으로 활동할 당시에도 주도적이고 주체적으로 공연을 이끌어간 측면이 있다. 비록 3년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으나 낭랑좌의 행보를 단순히 실패로만 규정할 수는 없다. 무수히 많은 시도와 실패를 딛고 오늘날 걸그룹의 성공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글은 오늘날 걸그룹의 첫 모습을 찾아가는 여정을 담고 있다. 아직 본격적으로 구명되지 않았던 낭랑좌의 실체를 드러낸 것과 기존의 소녀악극단을 바라보던 부정적 시각 대신에 그 구성원의 목소리를 통해 주체성을 드러내고자 했다는 점에서 이 글은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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