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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현진 (한국과학기술원)
저널정보
동양고전학회 동양고전연구 동양고전연구 제94호
발행연도
2024.3
수록면
245 - 271 (2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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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태조∼세종대 한양에 설치한 태평관의 관명, 태평관의 수리, 주요 기능, 그곳에서 행한 의례 등 한양 태평관의 전반에 대해 살펴보는 것이 목적이다. 1393년 개성, 1395년 한양에 각각 태평관을 건립했다. 둘 다 ‘수도에 설치한 명 사신을 위한 주요 객관’이라는 면에서 같은 관명을 갖게 되었다. 위치는 숭례문 안이다. 대청과 동・서랑, 구청에서 태종대에 지천사가 사신 반인의 관사로 편입되었고 북루가 추가되고 구청으로 동・서헌을 지었다. 북루와 동・서헌이 추가되기 전 두 그룹의 명 사신이 태평관에 함께 머물게 되었고, 그중 한 그룹이 태조 국장에 조문 온 사신이어서 그곳에서 「영사시제급조부의」를 행했다. 현실적인 면에서 공간 확보의 필요성 대두가 태종대 태평관 건물 구성 변화의 주된 이유가 되었다. 세종대에는 태평관의 협소로 인하여 다른 곳으로 옮기려는 논의가 두 번이나 있었으나 무산되었다. 그 대신 기존의 건물을 수리하되 건물 규모를 더 크게 하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 새로 생긴 건물은 어실이고, 두목이 많이 왔을 때 주변에 초옥을 지어 대처하면서 태평관의 전반적인 영역도 확장되었다. 회시를 실시할 정도로 광활한 곳이 되었다. 주요 기능은 명 사신을 위한 객관이었고, 그에 따라 연향을 베풀거나 문안 인사, 물품 하사 등의 일이 이루어졌다. 주요 의례는 연향, 「영사시제급조부의」, 배절 등을 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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