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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신현규
저널정보
인문사회예술융합학회 문화와융합 문화와 융합 제43권 제10호
발행연도
2021.10
수록면
873 - 894 (2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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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938년 일제강점기 조선권번의 기생 명단이 수록된 월보(일람표)를 분석하여 권번에서의 학습 시스템을규명하고자 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조선권번 ‘예기(藝妓)월보’(1938년 4월)는 수집가에 의해 비공개되었다가 최근에 연구 자료로 학계에 보고되었다. 조선권번은 설립 당시 서울 장안의 여타 권번과 달리 신생 권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1930년대에는 다른 권번을 뛰어 넘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성장했다. 조선권번 기생들은 하규일의 창조적지도하에 다양한 공연예술종목을 선보임으로써 당시 궁중 가무로 독보적인 지위를 갖고 있었던 한성권번보다 세를키울 수 있었다. 한성기생조합이 기부(妓夫) 있는 기생을 대상으로 한 유부기(有夫妓) 조합이었다면, 이에 대항하여 기부 없는기생을 대상으로 조직한 조합이 ‘다동기생조합’이다. 이 조합의 구성원은 주로 평양 중심의 서도 출신의 기생으로구성되었는데, 이후 1919년(대정 8년)에 대정권번으로 개칭하며, 대정권번에서 분리되어 평양기생들로만 조직된 대동권번이 이로부터 분리된다. 조선권번은 1923년에 하규일을 중심으로 대정권번에서 갈라져 나온 것이다. 초창기로부터 1936년까지 조선권번에서 교육시킨 기생만도 3,000여 명을 헤아렸다고 할 만큼 조선권번은 서울의 대표적인 권번이었다. 조선권번은 종로권번과는 달리 당시 설립 이후부터 독자적으로 명맥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조선 권번 예기월보(일람표)’에는 전혀 표시가 없다. 이는 권번 사무실에 모든 연락을 전화 4대로 지원해주고, 소속 기생들은 개인 전화를 소유했더라도 일람표에는 표기를 하지 않았다고 추측된다. 1938년 기준으로 ‘조선권번 및 종로권번 예기월보(일람표)’는 398명과 476명을 포함하면 중복되지 않는 874명이나 된다. 1914년 매일신보 예단일백인(藝壇一百人) , 1919년 조선미인보감(朝鮮美人寶鑑) 등과 마찬가지로 기생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목차

1. 일제 강점기 ‘조선권번’, 예기일람표 해제 2. ‘조선권번’의 기생학습 시스템 3. ‘조선권번’의 주인, 금하 하규일 4. 조선 기생의 1938년 예기 일람표 ‘조선권번’과 ‘종로권번’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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