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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최태만
저널정보
한국기초조형학회 기초조형학연구 기초조형학연구 제16권 제2호
발행연도
2015.4
수록면
495 - 507 (1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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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전쟁 직후 전쟁기록화의 역할에 주목한 일본 군부는 당시 일본의 저명한 화가들을 동원하여 전쟁기록화를 제작, 전국을 순회하며 전시를 개최하고 주요 기관에 헌납했다. 그 중 일부를 일본의 패전직전 조선에서 전시하기 위해 서울로 운송하였으나, 일본이 항복하면서 이 전쟁기록화는 당시 조선총독부 보도부 미술반장이었던 야마다 신이치(山田 新一)에 의해 은닉되었다. 1899년에 태어나 도쿄미술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한 야마다 신이치는 1923년 서울로 와서 경성제2고등학교 미술교사로 재직하며 조선총독부가 주최하던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 여러 차례 상을 받으며 조선에서 활동했다. 그러나 중일전쟁 직후 일본이 총력전체제로 진입하면서 그는 조선에서 많은 전쟁기록화를 그렸고, 조신인과 일본인 화가들을 모아 ‘단광회’를 조직하여 일본의 군국주의를 고무, 찬양하는 활동을 했다. 전쟁기록화를 은닉한 후 일본으로 돌아간 야마다는 1946년 GHQ의 계약직으로 전쟁기록화 수집업무를 맡았다. 1946년 5월GHQ의 앤더슨(Leslie Anderson) 대위와 서울로 온 야마다는 자신이 은닉했던 전쟁기록화를 수집하여 일본으로 돌아갔다. 이 전쟁기록화는 미군에 의해 압수, 1952년 미국으로 이송되었으나 1970년 무기한대여 형식으로 일본으로 반환되었다. 이 논문은 그 동안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던 전쟁기록화의 수집과정과 수집된 주요작품을 야마다의 회고와 당시 최근에 공개된 그의 일기를 통해 규명함으로써 일본에서 이루어진 전쟁기록화 수집에 관한 연구를 발전시킨 것에 그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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