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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유정서 (월간민화)
저널정보
한국민화학회 한국민화 한국민화 제20호
발행연도
2024.6
수록면
5 - 28 (2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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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도(百子圖)는 이름 그대로 백(百)으로 상징되는 ‘많은 어린 아이들’을 한 화폭에 담아 전통시대의 중요한 복락(福樂) 중 하나로 여겨졌던 다남(多男)과 자손번창에 대한 염원을 표현한 그림이다. 이러한 성격에 따라 주로 병풍으로 제작되어 혼례용 치장 그림이나, 혹은 다산과 관련이 깊은 여성의 생활공간을 장식하는 용도로 많이 쓰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제까지의 연구 또한 이러한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혼례용 병풍으로서의 기능에 집중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궁중가례용 병풍으로 쓰이기 훨씬 이전부터 백자도는 매우 폭넓고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어왔다. 조선후기의 여러 문헌에는 백자도가 궁궐의 중요한 풍습인 풍습들인 연상시(延祥詩)나 단오첩(端午帖) 등의 주요 소재로 자주 등장한다. 이런 점으로 보아 백자도는 일찍부터 새해의 벽사구복(闢邪求福)을 염원하는 세화(歲畫)나 청명, 단오 등의 절기에 쓰이는 액막이 그림 등으로 폭넓게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궁궐과 민간의 중간지대라고 할 수 있는 조선후기 지식인 계층에서는 백자도가 삶의 교훈과 경계의 뜻이 담긴, 넓은 의미의 우의적(寓意的) 풍자화(諷刺畵), 혹은 감계화(鑑誡畵)로 널리 쓰이기도 했다. 이는 ‘다남(多男) 등을 기원하는 길상화’라는, 백자도의 기능에 대한 가장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인식과는 전혀 성격이 다른 또 하나의 새로운 인식이다.
이 논문에서는 유득공과 같은 실학자를 포함, 조선후기 지식인들의 개인 문집에 나타난 백자도 관련 기록들의 분석을 통해 이러한 인식의 실체와 형성 배경 등을 밝혀보았다. 결론적으로 백자도는 결코 다남자를 기원하는 혼례용 병풍이나 여성의 생활공간을 장식하는 길상화로만 쓰인 것이 아니었으며 풍자와 감계와 같은 보다 넓은 상징성을 포함하는 ‘다의적 장식화’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혼례용 병풍’이라는 통념에 오랫동안 갇혀 있던 백자도에 대한 새롭고 포괄적인 접근이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목차

Ⅰ. 머리말
Ⅱ. 「맹영광백동도가」에 나타난 유득공의 백자도 인식
Ⅲ. 백자도 관련 시문에 나타난 조선후기 지식인들의 백자도 인식
Ⅳ.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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