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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성태 (성균관대학교)
저널정보
한국현대소설학회 현대소설연구 현대소설연구 제93호
발행연도
2024.3
수록면
59 - 92 (34page)
DOI
10.20483/JKFR.2024.03.9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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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애는 영속적이고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정치적, 사회적, 언어적 힘의 개입 속에서 형성되고 변이되는 역사적 감정이다. 경술국치 전후 국가의 흥망성쇠에 대한 공감을 통해 민족애를 촉발시키는 일반적인 논법과 달리 이광수는 동정의 함양을 통해 민족애를 형성하고자 했다. 선각자적 세대의식을 지녔던 그의 민족애는 당대적 맥락에서 봤을 때 ‘애국’보다는 ‘애민’에 가까웠다. 그는 자긍보다는 동정으로, 애국보다는 애민으로 민족애를 형성했는데 이는 일제에 위협적이지 않다는 한계를 띠고 있었다. 그는 동정의 해방적 가능성을 인지했지만 동시에 그것을 무한정 확장할 수 없는 현실적 제약도 간과하지 않았다. 일제에 대한 적개심을 지녔음에도 매체의 한계를 의식한 그는 적개심이 소거된 민족애를 구성했다. 또한 사랑과 민족애의 반목을 인지한 그는 사랑의 감정을 유사가족애로 전환시켜 민족애의 자원으로 활용하고자 했다. 동정의 함양, 적개심의 소거, 그리고 사랑의 관리를 통해 1910년대 이광수는 애민의 민족애를 형성했다. 1919년 1차 세계대전 이후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로 독립의 희망을 얻은 그는 「2.8독립선언문」에서 일본에 대하여 영원의 혈전을 선언한다고 쓴 다음 상해로 탈출한다. 하지만 그가 형성한 애민의 민족애를 떠올려 볼 때 그에게 조선인민 대다수가 거주하는 한반도로 돌아오는 일은 필연적이었다.

목차

요약
1. 민족애의 역사화
2. 애국보다는 애민, 자긍보다는 동정
3. 매체의 한계와 소거된 적개심
4. 민족애를 위협하는 사랑
5.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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