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강제훈 (고려대학교)
저널정보
고려사학회 한국사학보 韓國史學報 제94호
발행연도
2024.2
수록면
241 - 277 (37page)
DOI
10.21490/jskh.2024.2.94.241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이 글은 조선이 유교 국가를 선언하고, 그 실천의 내용으로 유교식 국가 의례를 정비하는 과정에 대한 검토이다. 유교 국가 의례는 오례로 구성되는데, 조선에서는 자신의 본속에 해당하는 독자적인 오례를 구성하게 된다. 1444년 오례를 만들고자 했던 첫시도는 결국 미완인 상태로 중단되었고, 길례를 제외한 변형된 방식으로 실록에 수록 되었다. 이글에서는 당시에 예악을 동시에 정비하였는데, 세종 때 아악을 전면 검토하여 의례 음악으로 만들었고, 이를 통합하여 오례 정리 작업이 진행되었다고 이해하였다. 그런데 「용비어천가」가 제작되고 이에서 파생된 음악과 기존의 향・당악에서 적절한 악곡을 선택하여 시용속악이 선언되었다. 그리고 이 속악을 전체 의례에 적용하기로 하였는데, 이러한 결정은 오례 정리를 마감하지 못하게 만든 가장 중요한 이유가 되었다. 세조 때는 속악을 전용하기로 하면서 아악의 폐지를 선언하였다. 그리고 속악을 적용한 환구와 종묘 의례가 제작되어 시행되었고, 조회와 각종의 공식 연향에서 속악을 사용하였다. 부분적으로 국가 제사에 아악이 사용되었으나, 이는 섭행에만 해당하고, 아악은 소멸을 우려할 정도로 심각하게 위축되었다. 『국조오례의』는 의례에서 절차와 음악을 통합된 형태로 정리한 성과였다. 전체적으로 속악이 의례 음악의 주류를 형성하였지만, 아악도 국가 제사에서 일정한 영역을 인정받았다. 국가 제사는 시작과 끝을 지정하여 진행하였는데, 『국조오례의』에서 처음으로 음악이 순서 안에 통합되었고, 각 절차에서 행례 동작과 음악을 일치시켰다. 또한 공식 연향에서 노래와 춤을 고정시키지 않음으로써, 각 연향의 특성과 차별성이 음악을 통해 드러나도록 설정하였다. 예악은 통치의 주요한 요소로 중요성이 인식되었고, 예와 악은 병행 정리되었지만, 실제의 의례에서 대등하게 위상을 설정하는 작업은 『국조오례의』 단계에서 성취되었다. 조선에서 창제된 속악과 각종의 의례 절차를 결합하였기 때문에 조선의 국가 의례는 중국이나 이전 왕조와는 명확하게 구분되는 조선의 本俗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국조오례의』는 독자적인 유교 국가 의례를 만들려던 오랜 노력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예·악의 상호 규정 선언
3. 신악 중심의 의례악 운용
4. 아악의 복구와 『국조오례의』 편찬
5. 맺음말
참고문헌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151-24-02-0894856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