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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부산경남사학회 역사와경계 역사와경계 제127집
발행연도
2023.12
수록면
293 - 331 (39page)
DOI
10.52271/PKHS.2023.12.127.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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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중국남부에 세워졌던 남월국(BC.204~BC112년)의 지속과 붕괴에 해외교역이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를 분석한 것이다. 南越王博物院에 전시된 전시(소장)품을 그 분석의 대상으로 삼았다. 해외교역의 점에서 볼 때, 남월국은 남방 육해상교역로에서 해양 실크로드로의 전환기에 위치해 있었다. 남월국은 진한의 체제와 상징으로 왕권의 귄위를 세우고자 했고, 그 양상은 묘의 구조와 부장품에 잘 드러난다. 그것은 남월국이 독자적인 왕조국가의 수립을 도모한 표상이다. 박물관에 소장 전시되어 있는 해외교역품은 상당수가 인도-미얀마-雲南의 남방육상교역로를 통하여 들어온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해외 교역품 가운데 남중국해를 통과하여 직접 番禹에 들어온 해양선박에 적재되었던 것은 많았다고 보기 어렵다. 해상교역은 남월국의 존립과 발전에 유용한 동력이 될 수 있었지만, 남월국은 아직 해양왕국으로서의 입지를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 북쪽으로 南嶺山脈이 둘러싼 지리적 조건은 남월국의 존립에 유용하였지만, 남쪽의 바다는 해상교역에 활용되지 못했다. 북쪽에서 내려온 남월 왕권들은 월족과의 연합 위에 통치했고, 토착의 월족들은 해양항해에 일정한 경험과 지식과 정보를 보유하고 있었다. 남월국이 소멸된 전한 무제 이후 番禹는 남해물산을 입수하기 위한 거점 해양도시가 되었다. 남해물산은 중원과 동남아해역을 묶어주는 물자였다. 남월국은 남해물산의 중계교역으로서 국력의 발판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페르시아 혹은 인도 해양상인들은 중국에 다다르기 어려웠고, 남월의 상인들도 동남아로 진출할 조건을 구비하지 못했다. 남월국의 단명은 해양 입지를 충분히 살리지 못한 탓이다. 남월국은 단명으로 끝났지만, 남월국의 영역은 왕국이 아닌 문화권 즉 羽人船紋銅鼓 문화권으로 지속되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南越國에 대한 다른 질문
Ⅱ. 제국의 모형으로서의 묘실과 부장품
Ⅲ. 舶來品과 해양문화
IV. 羽人船紋銅製桶
V. 羽人船紋銅鼓 문화권의 형성
Ⅵ. 맺음말에 대신하여: 남월국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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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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